소로야의 그림은 왜 눈부실까: 해변과 정원의 빛을 읽는 방법
소로야의 그림을 보면 햇빛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밝은 곳만 따라가면 그 느낌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옅은 천에는 분홍과 보라가 섞여 있고, 정원의 환한 벽 바로 옆에는 짙은 초록이 자리한다. 밝고 어두운 부분이 서로 어떤 차이를 만드는지 살펴보면, 화면에서 빛을 느끼는 이유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인다.
호아킨 소로야의 해변 그림 한 점과 정원 그림 두 점을 함께 보자. 세 작품에서 찾을 것은 정확한 시간이나 날씨를 맞히는 단서가 아니다. 먼저 눈에 띄는 밝은 부분을 고른 뒤, 그 바로 옆의 색과 경계를 비교하는 감상이다. 흰색을 찾는 일에서 시작해 그림 전체의 빛을 읽는 쪽으로 시선을 넓혀보면 좋다.
해변의 옅은 천에는 몇 가지 색이 있을까

호아킨 소로야, 《다친 발》(The Wounded Foot), 1909, 캔버스에 유채.
《다친 발》에서는 앞쪽 두 아이와 뒤편 물놀이하는 사람들이 한 화면에 놓여 있다. 처음에는 아이들의 행동이 궁금해지지만, 잠깐 이야기를 내려놓고 모자와 천을 보자. 왼쪽의 넓은 모자는 연한 노랑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가장자리와 표면 사이에 청록색과 보랏빛이 끼어 있고, 모자 아래 얼굴은 더 어둡게 보인다.
오른쪽 아이의 몸을 감싼 옅은 천도 비슷하다. 밝은 부분에는 크림색과 분홍빛이, 접히거나 어두워지는 부분에는 회색과 보랏빛이 보인다. 멀리서 하나의 밝은 천으로 읽히던 것이 가까이에서는 서로 다른 색의 면으로 나뉜다. 이 차이를 따라가면 천의 접힘과 몸의 방향이 한층 또렷해진다.
여기서 해볼 만한 상상이 있다. 천을 같은 밝기의 흰색 한 가지로 가득 칠했다고 생각해보자. 전체적으로 환해질 수는 있어도, 어느 부분이 앞으로 나오고 어디가 접혔는지 읽을 단서는 줄어들 것이다. 실제 그림으로 돌아오면 옅은 천 속의 어두운 색도 빛을 느끼게 하는 데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 보인다.
다음에는 물을 보자. 물 전체가 맑은 파랑으로 채워져 있지 않다. 회보라색과 청록색 사이에 짧고 밝은 물결 자국이 흩어져 있다. 눈을 조금 멀리 두면 밝은 자국들이 하나의 물 표면으로 이어지고, 가까이 보면 각각의 붓 자국으로 갈라진다. 천에서는 비교적 넓은 면으로 보이던 밝음이 물에서는 끊어진 작은 조각으로 나타나는 셈이다.
정원의 벽은 옆의 나무와 함께 보기

호아킨 소로야, 《세비야 알카사르 정원의 한쪽》(Corner of the Garden, Alcazar, Sevilla), 1910, 캔버스에 유채.
두 번째 그림에서는 사람 대신 나무와 담, 길이 화면을 채운다. 위쪽에는 푸른 하늘이 있고, 아래쪽에는 짙은 나무와 옅은 벽이 맞닿아 있다. 먼저 벽만 보았다가 바로 옆의 나무로 눈을 옮겨보자. 비슷한 높이에 있는 두 부분의 밝기 차이가 크기 때문에, 벽의 밝은 면이 더욱 쉽게 눈에 들어온다.
그 벽도 한 덩어리의 흰색은 아니다. 햇빛을 받은 듯한 크림색 부분과 회보라색으로 어두워지는 부분이 나뉜다. 앞쪽의 분홍빛 길과 낮은 담, 초록색 생울타리까지 함께 보면 화면은 여러 층으로 쌓인다. 가까운 길에서 울타리를 지나 뒤의 벽과 나무로 시선이 이동하면서 정원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유용한 관찰 대상은 밝은 면의 크기다. 해변의 물결은 작은 밝음이 흩어져 있었지만, 여기서는 비교적 넓게 이어지는 벽이 기준이 된다. 벽을 먼저 찾고 나무의 윤곽을 따라가면, 잎을 한 장씩 알아보지 않아도 어두운 덩어리와 밝은 면의 관계를 읽을 수 있다. 그림을 축소해서 볼 때와 확대해서 볼 때 각각 확인할 것이 생긴다.
정원이라는 소재만으로 시원하다거나 평온하다고 정해두지 않아도 좋다. 하늘과 벽의 밝은 부분에 오래 머물면 햇볕이 강한 장소처럼 느껴질 수 있고, 짙은 나무와 울타리를 따라가면 그늘의 무게가 더 크게 다가올 수도 있다. 어떤 부분을 먼저 보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감상을 작품의 색과 연결해 말해보자.
그늘진 길에서 빛이 끊어지는 자리 찾기

호아킨 소로야, 《세비야 알카사르, 춤의 뜰》(Court of the Dances, Alcázar, Sevilla), 1910, 캔버스에 유채.
세 번째 그림은 앞의 정원과 같은 해에 그려졌지만, 시선이 들어가는 방식이 다르다. 양옆의 잎과 나무 사이로 좁은 길이 이어지고, 뒤쪽에는 밝은 벽과 푸른 무늬의 타일이 보인다. 화면 가장자리의 어두운 부분을 지나 안쪽의 밝은 곳으로 눈이 향하는지 살펴보자. 나에게 가장 먼저 보이는 곳이 꼭 다른 사람과 같을 필요는 없다.
길바닥을 따라가면 분홍빛과 살구색 길 위로 청회색의 넓은 그늘이 가로지르는 것이 보인다. 바닥의 작은 푸른 무늬와 구별하며 넓은 명암 변화를 따라가보자. 밝은 부분과 그늘이 번갈아 놓인 자리가 눈에 들어온다. 이 변화를 눈으로 천천히 따라가면, 한 걸음씩 다른 빛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은 그림을 보며 해볼 수 있는 감상의 한 가지 방식이다.
두 정원을 번갈아 보면 차이가 더 선명해진다. 두 번째 그림의 넓은 벽에서 세 번째 그림의 좁아지는 길로 눈을 옮기면, 바닥의 밝기 변화가 시선을 안쪽으로 이끄는 듯하다. 같은 정원 소재라도 무엇을 기준으로 보는지에 따라 빛이 넓게 펼쳐지거나 작은 구간으로 나뉘어 느껴질 수 있다.
세 작품을 다시 볼 때 남길 세 문장
이제 작품마다 한 문장씩 적어보자. 해변에서는 “옅은 천의 어느 부분이 어떤 색으로 어두워지는가”, 첫 번째 정원에서는 “가장 밝게 보이는 벽 바로 옆에 무엇이 있는가”, 두 번째 정원에서는 “길을 따라 밝기가 어디에서 바뀌는가”를 묻는다. ‘색이 예쁘다’는 감상에 위치와 비교 대상을 덧붙이는 연습이다.
예를 들어 “천의 접힌 부분에서 보라색이 보이고, 옆의 크림색이 더 밝게 느껴진다”라고 쓸 수 있다. 다른 사람이 같은 곳을 회색으로 읽더라도 관찰을 틀렸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화면의 크기와 밝기, 주변 색에 따라 인상이 달라질 수 있으니, 색 이름 하나보다 어떤 부분을 서로 비교했는지 설명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세 작품을 모두 본 뒤 처음의 해변으로 돌아가보자. 처음에는 아이들의 모습만 보였다면 이제 모자 아래의 그늘, 천에 섞인 색, 물 위에 끊어져 있는 밝은 자국이 따로 눈에 들어올 수 있다. 소로야의 그림에서 느낀 눈부심을 이렇게 구체적인 자리와 연결해보면, 다음 풍경화를 볼 때도 나만의 관찰을 이어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