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2026년 9월 15일에 발표한 8월 수출입물가지수를 보면 원화 기준 수출물가는 7월보다 3.7% 내렸고 수입물가는 2.4% 내렸습니다. 수출품 값이 수입품 값보다 더 많이 떨어졌으니 우리 쪽이 불리해졌다고 읽기 쉽습니다. 그런데 같은 보도자료에서 순상품교역조건지수는 118.12에서 119.90으로 1.5% 올랐습니다. 수출 한 단위로 살 수 있는 수입품이 오히려 늘었다는 뜻입니다.
두 숫자는 서로 틀린 것이 아니라 재는 통화와 시점이 다릅니다. 이 글을 읽고 나면 교역조건지수가 무엇을 무엇으로 나누는지, 원화 기준 물가와 왜 방향이 갈릴 수 있는지 설명할 수 있고, 보도자료 통계표의 숫자만으로 119.90을 직접 다시 계산해 볼 수 있습니다.
교역조건지수는 수출 가격을 수입 가격으로 나눈 값
순상품교역조건지수는 수출품 한 단위 가격과 수입품 한 단위 가격의 비율을 2020년 평균을 100으로 놓고 나타낸 지수입니다. 식은 수출가격지수÷수입가격지수×100입니다. 수출품이 수입품보다 더 많이 오르거나 덜 내리면 지수가 오르고, 반대면 내립니다.
가상의 예로 봅니다. 2020년에 100달러이던 수출품이 올해 120달러가 되고, 50달러이던 수입품은 그대로라고 합시다. 수출가격지수는 120, 수입가격지수는 100이므로 교역조건지수는 120÷100×100=120입니다. 수출 한 단위로 살 수 있는 수입품의 양이 2020년 평균보다 20% 많다는 뜻입니다. 수입품을 1.2개 산다는 뜻은 아닙니다. 한국은행 「경제금융용어 800선」도 지수 93.25를 예로 들어, 이것이 0.9325단위를 수입한다는 뜻이 아니라 2020년보다 6.75% 줄었다는 뜻이라고 짚습니다.
여기에 환율을 넣어 봅니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에서 1,400원으로 내리면 두 상품의 원화 금액은 똑같이 약 6.7% 줄어듭니다. 분자와 분모에 같은 수를 곱했으니 비율은 여전히 120입니다. 환율은 수출 쪽과 수입 쪽에 함께 작용하므로, 원화 기준 물가를 크게 흔드는 환율 변동도 가격의 비율에서는 대부분 지워집니다. 실제 지수는 수백 개 품목의 가중평균이고 결제 통화도 품목마다 달라 완전히 똑같이 지워지지는 않습니다.
같은 8월을 세 가지 기준으로 보면
한국은행은 수출입 계약 시점의 가격을 조사해 원화로 환산한 원화 기준 지수를 주지수로 내고, 계약통화 기준과 달러 기준 지수를 보조지수로 함께 작성합니다. 8월 숫자를 기준별로 나란히 놓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원화 기준으로는 수출 −3.7%, 수입 −2.4%입니다. 보도자료는 수출물가 하락의 원인으로 원/달러 환율 하락을 듭니다. 월평균 환율이 7월 1,497.43원에서 8월 1,406.30원으로 6.1% 내렸습니다. 같은 달러를 받아도 원화로 바꾸면 적어지니 원화 기준 가격이 내려갑니다. 하지만 앞의 예처럼 이 환율 몫은 비율에서 대부분 지워집니다.
환율을 뺀 계약통화 기준으로는 수출물가가 2.2%, 수입물가가 3.2% 올랐습니다. 두바이유 월평균 가격이 배럴당 76.75달러에서 88.75달러로 15.6% 오른 시기였습니다. 계약 시점만 보면 수입품이 수출품보다 더 올랐고, 원화 기준 수출물가를 수입물가로 나눈 값도 118.85에서 117.22로 1.4% 내립니다. 그런데도 교역조건이 좋아진 까닭은 교역조건이 다른 시점의 가격을 쓰기 때문입니다.
교역조건지수는 달러 기준이고, 통관 시점에 맞춘 ‘시차적용’ 물가지수를 씁니다. 물가는 계약할 때 가격으로 조사하지만 수출입 금액은 물건이 세관을 통과할 때 집계되므로, 계약에서 통관까지 걸리는 시간만큼 가격을 옮겨 맞춥니다. 보도자료는 계약부터 통관까지 평균 2개월이 걸리는 승용차 수출을 예로 듭니다. 그래서 8월 교역조건에는 8월에 통관된 물건의 가격이 들어갑니다. 아래에서처럼 통계표로 그 가격을 역산하면 수출은 전월보다 1.6% 오르고 수입은 0.1% 올라 거의 제자리였습니다. 1.016÷1.001이 약 1.015이므로 교역조건이 1.5% 좋아진 것입니다.
계약 시점에 오른 가격이 어느 달 통관 가격에 나타날지는 품목마다 걸리는 시간이 달라 이 표만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계약통화 기준 수입물가가 올랐다는 사실만으로 다음 달 교역조건을 점치기는 어렵습니다.
통계표만으로 119.90 다시 계산하기
보도자료에는 시차적용 물가지수가 따로 실려 있지 않지만, 표에 있는 숫자로 되살릴 수 있습니다. 무역지수 작성 방법에 따르면 물량지수는 금액지수를 시차적용 물가지수로 나눈 값입니다. 그러니 금액지수를 물량지수로 나누면 시차적용 가격이 나옵니다. 모든 지수는 달러 기준이고 2020년이 100입니다.
8월 수출은 금액지수 237.04, 물량지수 153.48이므로 237.04÷153.48×100=154.44입니다. 수입은 163.09÷126.61×100=128.81입니다(둘 다 소수 셋째 자리에서 반올림). 두 값을 나누면 154.44÷128.81×100=119.90으로 공표된 순상품교역조건지수와 같습니다. 같은 방법으로 7월을 계산하면 118.13이 나와 공표치 118.12와 반올림 차이만 납니다.
보도자료에는 소득교역조건지수도 있습니다. 순상품교역조건지수에 수출물량지수를 곱하고 100으로 나눈 값으로, 가격만 보는 순상품교역조건지수의 약점을 보완해 수출 총액으로 살 수 있는 수입품의 양을 나타냅니다. 119.90×153.48÷100=184.02로 역시 공표치와 같습니다. 8월 소득교역조건지수는 1년 전보다 60.0% 높았는데, 가격 비율(27.1%)과 수출 물량(25.9%)이 함께 늘어난 결과입니다.
긴 흐름에서 보면
순상품교역조건지수는 2024년 1월 90.95로 2020년 평균보다 9% 남짓 낮았고, 2025년 내내 90대에 머물렀습니다. 2026년 1월 102.26으로 100을 넘은 뒤 8월 119.90까지 올라, 이 그림이 보여 주는 32개월 가운데 가장 높습니다. 전년 같은 달과 비교하면 8월 교역조건은 27.1% 높고, 보도자료는 그 이유로 달러 기준 수출가격이 39.6% 올라 수입가격 상승률 9.9%를 크게 웃돈 점을 듭니다.
2026년 값은 모두 잠정치입니다. 당월 지수는 다음 달 발표 때 수정될 수 있고, 한 해의 지수는 통관 자료가 확정된 뒤 이듬해 3월에 확정됩니다. 과거 흐름이 앞으로도 이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교역조건 숫자를 볼 때 확인할 것
교역조건이 좋아지면 같은 양을 수출하고 더 많은 수입품을 살 수 있어 나라 전체의 실질 구매력에 보탬이 되고, 나빠지면 그 반대입니다. 다만 순상품교역조건지수는 가격의 비율만 보므로 얼마나 많이 팔았는지는 소득교역조건지수로 함께 봐야 합니다. 이 글은 특정 투자나 거래를 권하지 않습니다.
물가나 교역조건 기사를 보면 세 가지를 먼저 확인하면 됩니다. 원화 기준인지 계약통화나 달러 기준인지, 계약 시점 가격인지 통관 시점 가격인지, 그리고 잠정치인지입니다. 원화 기준 물가의 등락 가운데 환율 몫은 비율을 만들면 대부분 사라진다는 점을 기억해 두면, 수출물가와 교역조건이 반대로 움직이는 달도 헷갈리지 않습니다. 9월분은 2026년 10월 16일에 나옵니다. 원문과 통계표는 한국은행 「2026년 8월 수출입물가지수 및 무역지수(잠정)」에서, 월별 시계열은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의 교역조건지수 표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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