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IELD NOTES

세잔의 탁자 모서리는 천 밑에서 이어질까

폴 세잔이 1877년 무렵부터 1894년 무렵까지 그린 정물화 네 점에서 탁자의 앞 모서리를 따라가며, 한 자리에서 본 장면이 여러 자리에서 본 면들의 모음으로 바뀌는 과정을 봅니다.

정물화 속 탁자의 앞 모서리를 찾아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눈으로 따라가 본다고 해 보자. 그 선은 대개 한 번쯤 천이나 과일에 가린다. 가려진 선이 반대편에서 다시 나올 때 우리는 그것이 같은 높이, 같은 기울기로 나오리라고 기대한다. 폴 세잔의 정물화에서는 이 기대가 자주 어긋난다.

이 글에서는 세잔(1839–1906)이 1877년 무렵부터 1894년 무렵까지 그린 정물화 네 점에서 탁자의 모서리를 따라간다. 네 점을 보고 나면 다른 정물화 앞에서도 그 그림이 한 자리에서 본 장면인지, 여러 자리에서 본 면들을 한 화면에 모은 것인지 스스로 가려 볼 수 있다.

세잔은 남프랑스 엑상프로방스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흔히 후기 인상주의로 분류되며,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에세이는 색으로 형태를 쌓는 그의 방법과 자연을 분석하는 태도가 입체파와 야수파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소개한다. 네 점은 모두 메트가 퍼블릭 도메인으로 공개한 작품이다.

기준선 하나: 알베르티의 열린 창

비교할 기준이 하나 있으면 보기가 쉽다. 15세기 피렌체의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는 1435년에 쓴 『회화론』 1권에서 자신이 그림을 시작하는 방법을 적었다. 먼저 원하는 크기의 직사각형을 긋고, 그것을 그려질 것을 내다보는 열린 창으로 여긴다. 그다음 그 안에 그려질 사람의 키 높이, 곧 보는 사람의 눈높이쯤에 점 하나를 정하고 중심점이라 부른다. 바닥의 선들은 모두 이 점을 향해 모인다.

이 방법에는 약속이 하나 들어 있다. 화가와 관객은 창 앞 한 자리에 서 있고, 눈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면 탁자의 앞 모서리는 곧은 선 하나이고, 천이 그 가운데를 가려도 양쪽 끝은 같은 직선 위에 있어야 한다. 이 약속을 자로 삼아 세잔의 탁자를 차례로 재어 보자.

모서리가 이어지는 탁자: 《물병, 컵, 사과가 있는 정물》

폴 세잔의 《물병, 컵, 사과가 있는 정물》. 황토색 벽지에 푸른 꽃무늬와 흰 사선이 마름모를 이루고, 그 앞 받침 위 흰 냅킨에 녹색 물병, 녹색 띠를 두른 흰 컵, 붉고 노란 사과와 보랏빛·분홍빛 열매가 놓여 있다. 받침의 앞 모서리가 화면을 가로지른다.
폴 세잔, 《물병, 컵, 사과가 있는 정물》(Still Life with Jar, Cup, and Apples), 1877년경, 캔버스에 유채, 60.6 × 73.7 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H. O. Havemeyer Collection, Bequest of Mrs. H. O. Havemeyer, 1929, 29.100.66. 퍼블릭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1877년 무렵의 그림이다. 녹색 유약을 바른 물병, 녹색 띠를 두른 흰 컵, 사과 여러 알과 보랏빛·분홍빛 열매 두 알이 흰 냅킨 위에 있다. 메트의 설명으로는 이 받침은 상자이고, 뒤 벽지의 V자 무늬가 냅킨의 모양과 닮았다.

받침의 앞 모서리를 따라가 보자. 왼쪽 끝에서 출발한 선은 화면 가운데에서 냅킨 밑으로 들어갔다가, 냅킨 오른쪽 끝에서 거의 같은 높이로 다시 나와 오른쪽 끝까지 간다. 알베르티의 자로 재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이 그림에서 탁자는 아직 한 자리에서 본 탁자다.

대신 눈에 띄는 것은 칠하는 방식이다. 냅킨은 흰색, 옅은 회록색, 연한 푸른색의 짧은 붓 자국이 나란히 쌓여 주름이 된다. 사과에는 짙은 그림자가 거의 없고, 빨강에서 주황, 노랑으로 넘어가는 색의 차이로 둥근 면이 돌아간다. 메트 에세이는 이 무렵 세잔이 초기의 강한 명암 대비를 버리고 서로 이웃한 색의 단계로 형태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설명하며 바로 이 그림을 예로 든다. 모서리는 아직 곧지만, 형태를 쌓는 재료는 이미 빛과 그림자에서 색으로 바뀌고 있다.

양쪽 끝이 맞지 않는 탁자: 《사과와 앵초 화분이 있는 정물》

폴 세잔의 《사과와 앵초 화분이 있는 정물》. 청록색 벽 앞 탁자에 흰 천이 넓게 덮여 있고, 그 위와 왼쪽 탁자 면에 붉고 노란 사과가 흩어져 있다. 오른쪽에는 분홍 꽃과 짙은 초록 잎의 앵초 화분이 있다. 왼쪽에는 회청색 탁자 면이 넓게, 오른쪽에는 적갈색 탁자 가장자리와 물결 모양 앞판이 보인다.
폴 세잔, 《사과와 앵초 화분이 있는 정물》(Still Life with Apples and a Pot of Primroses), 1890년경, 캔버스에 유채, 73 × 92.4 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Bequest of Sam A. Lewisohn, 1951, 51.112.1. 퍼블릭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13년쯤 뒤의 그림이다. 메트에 따르면 세잔은 꽃 피는 식물을 드물게 그렸고, 화분은 정물화 세 점에만 넣었다. 물결 모양 앞판과 휜 다리가 달린 이 탁자는 1890년대의 뛰어난 정물화 세 점에만 쓴 것으로 보이며, 이 그림은 한때 클로드 모네가 가지고 있었다.

이번에도 탁자 모서리를 따라가 보자. 왼쪽에서는 탁자 윗면이 회청색의 넓은 판으로 보인다. 사과 여러 알이 그 위에 놓일 만큼 넓고, 마치 위에서 내려다본 것처럼 깊다. 그 판의 앞 모서리 아래로 어두운 휜 다리가 내려온다. 그런데 이 모서리는 곧 흰 천 밑으로 들어가 버리고, 화면 오른쪽 끝에 가서야 탁자가 다시 나타난다. 오른쪽의 탁자는 적갈색이고, 윗면은 얇은 띠로만 보이며, 그 아래로 물결 모양 앞판이 드러난다. 옆에서 낮게 본 탁자다. 앞 모서리의 높이도 오른쪽이 왼쪽보다 조금 높다.

양쪽 끝을 한 직선으로 이어 보려 해도 가운데를 천이 모두 덮고 있어서 어디서 어떻게 만나는지 확인할 수 없다. 색도 두께도 높이도 다른 두 조각이 같은 탁자의 양 끝이라고 말해 주는 것은 그 사이를 덮은 흰 천뿐이다. 천은 가운데에서 언덕처럼 부풀어 오르고, 사과들은 그 주름 사이에 박힌 듯 앉아 있다. 메트 에세이는 이 그림을 두고 과일과 천을 명암이 아니라 아주 미묘한 색의 단계로 그렸고, 원근법의 공간을 비틀었다고 쓴다.

한 탁자, 여러 눈높이: 《사과와 배가 있는 정물》

폴 세잔의 《사과와 배가 있는 정물》. 황토색 탁자 윗면이 화면 아래 절반을 차지하고, 그 위에 푸른 테를 두른 흰 접시 두 개와 노랗고 붉은 사과, 초록 배가 놓여 있다. 탁자 앞판과 그 아래 틀은 정면에서 본 것처럼 평평하게 칠해졌고, 뒤로 푸른 회색 벽이 보인다.
폴 세잔, 《사과와 배가 있는 정물》(Still Life with Apples and Pears), 1891–92년경, 캔버스에 유채, 44.8 × 58.7 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Bequest of Stephen C. Clark, 1960, 61.101.3. 퍼블릭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메트는 세잔이 "사과 하나로 파리를 놀라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이 그림의 사과와 배는 엑상프로방스 근처 가족 소유지 부근에서 나는 과일이다. 메트의 설명은 이 그림에서 세잔이 전통적인 일점 원근법을 버리고 과일과 접시, 탁자를 여러 시점, 곧 정면과 위, 옆에서 살폈다고 말한다. 그 말을 화면에서 확인해 보자.

먼저 탁자 윗면이다. 황토색 면이 화면 아래 절반을 차지할 만큼 넓게 서 있다. 탁자를 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아야 이만큼 넓게 보인다. 접시 두 개도 같은 높이에서 본 모습이다. 푸른 테를 두른 흰 접시가 납작한 선이 아니라 속이 들여다보이는 넓은 타원으로 그려졌다. 그런데 그 위의 과일은 대부분 거의 옆에서 본 모습이다. 둥근 윤곽이 탁자 위로 곧게 솟아 있다. 그 가운데 위쪽의 큰 사과 하나만은 오목하게 파인 꼭지 부분을 정면으로 우리에게 돌리고 있다. 탁자 아래로 내려가면 앞판과 그 아래 틀이 사각형 그대로 평평하게 칠해져 있다. 이번에는 정면에서, 탁자 높이쯤에서 본 모습이다.

앞 모서리 자체도 곧은 수평선이 아니다.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으로 갈수록 조금씩 올라간다. 앞의 그림처럼 천이 가려 주지 않는데도, 세잔은 윗면과 앞판을 서로 다른 높이에서 본 대로 이어 붙였다. 그런데도 과일이 앞으로 굴러떨어질 것 같지는 않다. 과일마다 아래쪽에 짧고 짙은 그림자가 붙어 탁자에 닿은 자리를 붙잡고, 오른쪽 끝의 큰 과일 두 개가 무게를 받친다. 기울어진 면 위의 균형은 원근법이 아니라 색과 덩어리의 배치로 맞춰져 있다.

모서리가 사라진 자리: 《생강 항아리와 가지가 있는 정물》

폴 세잔의 《생강 항아리와 가지가 있는 정물》. 푸른 꽃무늬 천과 흰 천이 화면 아래를 덮고, 그 위에 초록 멜론, 레몬, 끈으로 감은 생강 항아리, 녹색 항아리, 과일이 담긴 흰 접시가 있다. 오른쪽 위에는 가지 두 개가 걸려 있고, 왼쪽 위로 가구 일부가 보인다. 탁자 모서리는 보이지 않는다.
폴 세잔, 《생강 항아리와 가지가 있는 정물》(Still Life with a Ginger Jar and Eggplants), 1893–94년, 캔버스에 유채, 72.4 × 91.4 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Bequest of Stephen C. Clark, 1960, 61.101.4. 퍼블릭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마지막 그림에서는 따라갈 모서리가 없다. 화면 아래쪽은 짙고 옅은 푸른 꽃무늬 천과 흰 천이 모두 덮고 있다. 탁자가 어디서 시작해 어디서 끝나는지, 앞 모서리가 어느 높이에 있는지 화면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흰 천은 오른쪽 아래로 흘러내리며 옅은 녹회색의 넓은 면이 되고, 그 면이 화면 오른쪽 아래 모서리까지 이어진다.

그 대신 물건들이 서로 겹치며 자리를 정한다. 초록 멜론이 녹색 항아리 아랫부분을 가리고, 레몬 하나가 멜론 아래 푸른 천 위에 놓여 있다. 생강 항아리를 감은 끈은 노란 선이 되어 항아리의 둥근 면을 따라 휘어진다. 과일이 담긴 흰 접시는 앞으로 크게 기울어 속이 훤히 보이는데, 과일은 그대로 접시 안에 머문다. 오른쪽 위에는 가지 두 개가 걸려 있다. 메트는 이 그림을 모양과 무늬, 색, 질감이 겹치며 풍부하게 어우러진 정물이라고 설명하고, 끈을 감은 생강 항아리가 세잔의 작품 열두 점이 넘는 곳에 나온다고 덧붙인다.

1877년 무렵의 그림에서 탁자 모서리는 모든 물건이 놓일 바닥이자 우리가 선 자리를 알려 주는 기준선이었다. 여기서는 그 일을 천의 주름과 물건들 사이의 겹침이 나누어 맡는다. 메트 에세이의 말을 빌리면, 세잔의 그림에서는 한 점으로 모이는 원근법보다 물건과 물건 사이의 관계가 먼저다.

다른 정물화 앞에서 해 볼 일

네 점을 나란히 두면 방향이 보인다. 1877년 무렵에는 탁자 모서리가 냅킨 밑을 지나 곧게 이어진다. 1890년 무렵에는 천을 사이에 둔 양쪽 끝이 색과 높이가 다르다. 1891–92년 무렵에는 천의 도움 없이도 한 탁자의 윗면과 앞판이 서로 다른 눈높이에서 그려진다. 1893–94년에는 모서리가 아예 사라지고 천과 겹침이 공간을 떠맡는다. 알베르티의 창은 관객에게 한 자리를 정해 주었지만, 세잔의 탁자는 보는 사람이 탁자 둘레를 조금씩 옮겨 다니며 본 면들을 이어 붙인 것에 가깝다. 메트 에세이에 따르면 세잔이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1907년 파리에서 열린 회고전들이 그의 자리를 굳혔다.

다음에 정물화를 볼 때는 물건에 가려 끊긴 선 하나를 골라, 끊긴 양쪽 끝이 한 직선 위에 있는지 재어 보자. 맞으면 그 그림은 창 앞 한 자리에서 본 장면이다. 맞지 않으면, 어느 쪽 면을 어느 높이에서 보았는지 하나씩 물어보자. 세잔의 경우 그 대답은 대개 면마다 달랐다.

END OF NOTE목록으로
COMMENTS BOX

이 기록에 대화를 더해 주세요.

궁금한 점, 다른 접근, 직접 해 본 결과를 나눠 주세요.

최신순

로그인 상태 확인 중…

댓글을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