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IELD NOTES

에이킨스의 그림에서 밑그림의 직선은 어디에 남아 있을까

토머스 에이킨스의 완성작 두 점과 그 밑에 깔린 원근 드로잉 두 점을 나란히 놓고, 자로 그은 선이 그림의 어디에 살아남았고 어디서 물감 밑으로 사라졌는지 찾습니다.

토머스 에이킨스의 그림 앞에 서면 묘하게 조용하다. 사람들은 움직이는 중인데 멈춰 있고, 방이나 강은 물러서지 않고 제자리에 단단히 놓여 있다. 그 단단함은 어디서 올까. 에이킨스는 큰 그림을 그리기 전에 자와 연필로 공간부터 설계했고, 그 설계도 몇 장이 다행히 그림과 함께 남아 있다.

이 글에서는 완성작 두 점과 그 밑에 깔린 원근 드로잉 두 점을 나란히 놓고, 드로잉에서 그은 곧은 선이 완성작의 어디에 살아남았는지, 어디서 물감 밑으로 사라졌는지 찾는다. 다 읽고 나면 다른 사실주의 그림 앞에서도 화면에 남은 직선 하나를 골라 연장해 보고, 화가가 공간을 어떻게 짰는지 스스로 짚어 볼 수 있다.

에이킨스(1844–1916)는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나 거의 평생을 그곳에서 일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에세이에 따르면 그는 1862년부터 1866년까지 펜실베이니아 미술 아카데미에서 공부하며 제퍼슨 의과대학의 해부학 강의도 들었고, 1866년 파리로 건너가 거의 3년 동안 주로 에콜 데 보자르의 장레옹 제롬에게 배웠다. 스페인에서 한겨울을 보낸 뒤 1870년 7월 필라델피아로 돌아왔다. 네 점은 모두 메트와 클리블랜드 미술관이 퍼블릭 도메인·CC0로 공개한 작품이다.

기준 하나: 파노프스키의 "수학적 공간"

미술사학자 에르빈 파노프스키는 1927년에 펴낸 「상징 형식으로서의 원근법」에서, 원근법이 우리가 몸으로 겪는 공간을 수학적 공간으로 바꾼다고 썼다. 실제로 우리는 두 눈으로, 쉬지 않고 움직이며 본다. 원근법의 화면은 움직이지 않는 눈 하나를 전제하고, 바닥을 끝없이 고르게 이어지는 격자로 만든다. 그 격자 위에서는 어떤 물건이든 정확한 자리와 크기를 얻는다.

이 생각을 자로 삼으면 질문이 하나 생긴다. 화가가 드로잉에서 그은 수학적 격자는 완성작에서 얼마나 보이는가. 보이지 않는다면, 그 격자는 무엇으로 가려지고 무엇으로 남았는가.

완성작 먼저: 《체스 두는 사람들》

토머스 에이킨스의 《체스 두는 사람들》. 어두운 갈색 응접실 가운데 작은 탁자 위에 체스판이 있고, 왼쪽에는 흰 머리 노인이 고개를 깊이 숙이고 앉아 있으며 오른쪽 남자는 이마를 손에 괴고 앉아 있다. 두 사람 사이 뒤에 흰 수염의 남자가 서서 판을 내려다본다. 왼쪽에 술병과 잔이 놓인 작은 원탁, 뒤 벽난로 위에 시계가 있고, 바닥의 붉은 양탄자 오른쪽 아래에 회색 고양이가 앉아 있다.
토머스 에이킨스, 《체스 두는 사람들》(The Chess Players), 1876년, 나무판에 유채, 29.8 × 42.6 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Gift of the artist, 1881, 81.14. 퍼블릭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메트의 설명에 따르면 필라델피아 어느 집의 응접실에서 화가의 아버지가 두 친구의 체스를 지켜보는 장면이다. 가운데 서 있는 흰 수염의 남자가 아버지 벤저민 에이킨스이고, 탁자 서랍 앞면에는 "벤저민 에이킨스의 아들이 76년에 그렸다"는 뜻의 라틴어가 적혀 있다. 벽난로 위에는 제롬의 그림 복제품이 걸려 있다. 1881년, 이 그림은 메트가 살아 있는 화가에게서 기증받은 첫 작품이 되었다.

화면은 어둡다. 갈색 벽과 검은 옷 사이에서 밝은 것은 세 사람의 이마와 흰 머리, 노란 체스 말, 호박색 술이 든 잔 몇 개뿐이다. 세 얼굴은 모두 아래로, 체스판으로 향한다. 왼쪽 노인은 고개를 깊이 숙였고, 오른쪽 남자는 이마를 손에 괴었다. 서 있는 아버지는 두 사람 사이에서 판을 내려다본다. 세 머리가 체스판을 꼭짓점 아래에 둔 삼각형을 이루고, 그 안에서 시선이 한 점으로 모인다.

이제 바닥을 보자. 붉은 양탄자가 화면 아래 3분의 1을 채우는데, 무늬는 빨강과 검정의 느슨한 얼룩으로 풀려 있다. 선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다. 이 방에서 반듯한 격자로 남은 것은 단 하나, 흑백 칸이 줄지어 뒤로 물러나는 체스판이다. 판의 왼쪽과 오른쪽 가장자리를 위로 늘이면 화면 가로의 한가운데 근처, 서 있는 아버지의 몸 앞에서 만난다. 사진 위에 눈대중으로 그어 본 선이라 대략의 위치다.

물감 밑의 설계도: 원근 드로잉

흑연과 잉크로 그린 원근 드로잉. 누런 판지 위에 사람 없이 가구만 그려져 있다. 아래쪽 바닥에 가로선이 촘촘하고, 가는 선 여러 가닥이 부채꼴로 모여 벽난로 선반 위 시계 오른쪽의 한 점으로 향한다. 그 아래 체스 탁자는 투명한 상자처럼 모든 모서리가 보인다. 왼쪽 위에 술병과 잔이 놓인 작은 탁자, 위쪽에 상자 안에 넣어 그린 의자 두 개, 왼쪽 가장자리에 손글씨 메모 두 줄이 있다.
토머스 에이킨스, 《「체스 두는 사람들」을 위한 원근 드로잉》(Perspective Drawing for the "Chess Players"), 1875–76년, 판지에 흑연과 잉크, 61 × 48.3 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Fletcher Fund, 1942, 42.35. 퍼블릭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같은 방의 설계도다. 판지가 61 × 48.3 cm로, 그림(29.8 × 42.6 cm)보다 크고 세로로 길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탁자와 의자, 벽난로와 시계, 술병이 놓인 작은 탁자, 액자만 있다.

아래쪽 바닥에는 가로선이 촘촘히 그어져 있고, 그 위로 가는 선 여러 가닥이 부채처럼 펼쳐지며 한 점으로 모인다. 그 점은 벽난로 위 시계의 바로 오른쪽, 시계 꼭대기보다 조금 높은 곳이다. 체스 탁자는 투명한 상자처럼 모서리가 다 그려져 있어 다리 뒤쪽 선까지 보인다. 화면 위쪽의 의자 두 개도 비스듬한 육면체 안에 들어 있다. 사물을 먼저 상자로 놓고, 그 안에 모양을 깎아 넣는 방식이다.

왼쪽 가장자리에는 손글씨 메모가 두 줄 있는데, "Horizon 60 inches"와 "Distance picture 30 inches"로 읽힌다. 첫 글자가 판지 가장자리에 걸려 잘렸지만, 두 번째 줄은 눈에서 화면까지의 거리를 적은 것으로 보인다. 수평선 높이 60인치(약 152 cm)는 서 있는 어른의 눈높이쯤이다. 그림에서 우리가 체스판 위를 내려다보게 되는 까닭이 여기서 보인다. 앉은 두 사람이 아니라 서 있는 사람의 눈으로, 판 위에 몸을 기울인 아버지와 비슷한 높이에서 보도록 짠 것이다.

그림과 견주면 차이가 분명하다. 드로잉에서 공간을 받치던 바닥의 격자는 그림에서 양탄자 얼룩 밑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격자의 논리는 남았지만, 눈에 보이는 격자는 체스판 하나로 줄었다. 파노프스키의 말을 빌리면, 수학적 공간은 그림 전체를 떠받치지만 겉으로는 놀이판 하나로만 얼굴을 내민다.

강 위의 직선: 《반환점을 도는 비글린 형제》

토머스 에이킨스의 《반환점을 도는 비글린 형제》. 넓은 강 위에서 파란 천을 머리에 두른 두 남자가 붉은 갈색의 2인 조정 배를 젓는다. 배는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으로 길게 뻗고, 오른쪽에는 파란 깃발을 단 말뚝이 물에서 솟아 있다. 뒤로 붉은 모자를 쓴 두 사람이 탄 배, 먼 강둑의 숲과 구경꾼들, 오른쪽 끝의 외륜선이 보인다. 물에는 사람들의 반사가 가로 붓질로 끊겨 비친다.
토머스 에이킨스, 《반환점을 도는 비글린 형제》(The Biglin Brothers Turning the Stake), 1873년, 캔버스에 유채, 101.3 × 151.4 cm. 클리블랜드 미술관, Hinman B. Hurlbut Collection, 1927.1984. CC0(Cleveland Museum of Art Open Access).

클리블랜드 미술관의 설명으로는 1872년 5월 필라델피아 스쿨킬강에서 열린 이름난 조정 경기다. 바니와 존 비글린 형제가 경기의 절반 지점을 표시한 말뚝을 돌고 있고, 오른쪽 중간 거리의 경쟁자들은 뒤처져 있다. 형제가 이 경기에서 이겼다. 강둑에는 구경꾼이 줄지어 섰고, 오른쪽 끝에는 연기를 뿜는 외륜선이 떠 있다.

물이 화면의 절반이 넘는다. 먼 강둑과 물이 만나는 선이 화면 가로를 거의 자로 그은 듯 곧게 가로지르고, 경쟁자의 배와 멀리 있는 배들이 모두 그 선 바로 아래에 얇은 가로줄로 놓인다. 형제의 배는 긴 사선이다.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으로 화면을 거의 가로지르고, 두 사람이 당긴 노가 그 사선과 엇갈리며 X자를 만든다. 그리고 오른쪽에 화면을 위아래로 꿰는 말뚝 하나가 서 있다. 말뚝 꼭대기의 파란 깃발은 형제가 머리에 두른 파란 천과 같은 색이다.

물 위의 반사를 보자. 형제의 몸 아래에는 살빛과 회색이 섞인 짧은 가로 붓질이 층층이 쌓여 내려간다. 물결에 끊긴 반사다. 그 가로 붓질 더미는 각 사람의 몸 바로 아래에 똑바로, 수직으로 놓여 있다.

강의 설계도: 같은 제목의 드로잉

흑연과 갈색 담채로 그린 드로잉. 가로로 곧게 그은 수평선 위에 먼 배들과 외륜선이 윤곽으로 놓이고, 그 아래 두 남자가 2인 조정 배를 젓는다. 배 아래 물에는 짧은 눈금이 찍힌 세로선과 둥근 고리 모양으로 겹친 반사가 그려져 있다. 위쪽 좌우에는 부채꼴로 뻗은 가는 선들이 있고, 말뚝은 그려져 있지 않다.
토머스 에이킨스, 《반환점을 도는 비글린 형제》(The Biglin Brothers Turning the Stake), 1873년, 흑연과 붓, 갈색 담채, 35.5 × 43.1 cm(시트). 클리블랜드 미술관, Mr. and Mrs. William H. Marlatt Fund, 1942.1066. CC0(Cleveland Museum of Art Open Access).

클리블랜드 미술관은 이 종이를 그림의 공간 윤곽을 잡은 원근 드로잉으로 소개하며, 원근 드로잉으로 그림의 공간을 먼저 푸는 관행이 르네상스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에이킨스가 받은 아카데미 교육을 보여 준다고 설명한다.

여기서는 수평선이 실제로 자로 그은 한 줄이다. 먼 배와 구경꾼, 오른쪽 외륜선이 모두 그 선 위에 윤곽만으로 얹혀 있다. 형제와 배는 그림과 거의 같은 자리에 있다. 물 쪽이 흥미롭다. 각 사람 아래로 세로선이 내려가고, 그 선에 짧은 눈금이 일정한 간격으로 찍혀 있다. 그 옆으로는 반사된 몸이 둥근 고리 모양으로 겹겹이 그려져 있다. 그림에서 수직으로 쌓여 있던 가로 붓질 더미는, 드로잉에서 이 눈금 달린 세로선을 따라 자리를 잡은 것이다. 노와 그 반사 사이에는 가는 선 몇 가닥이 그어져 오른쪽의 한 점 가까이로 모인다.

그리고 드로잉에는 말뚝이 없다. 그림에서 오른쪽을 위아래로 꿰던 말뚝과 깃발 자리는 비어 있다. 말뚝을 언제 어떤 이유로 넣었는지는 이 종이만으로 알 수 없다. 다만 그림에서는 그 말뚝 하나가 수평선과 배의 사선 사이에 세로축을 세워, 화면 안의 직선 세 방향을 모두 갖추게 한다.

체스 그림에서 바닥의 격자가 양탄자 밑으로 숨었듯, 강 그림에서도 눈금 달린 세로선은 사라졌다. 그러나 그 선이 정한 자리는 남아, 물결에 부서진 반사가 흐트러지지 않고 사람 아래에 꼿꼿이 서 있다.

그림 앞에서 해 볼 것

에이킨스의 그림에서 설계도의 선은 두 가지 방식으로 남는다. 하나는 직접 보이는 직선이다. 체스판, 수평선, 노와 배, 말뚝처럼 화면 안에서 실제로 곧은 사물이 격자의 대리인이 된다. 다른 하나는 보이지 않는 자리다. 양탄자 얼룩이나 물결 붓질은 느슨해 보이지만, 그 얼룩이 놓인 위치는 자로 정해져 있다.

다른 사실주의 그림 앞에서도 이렇게 해 보면 된다. 화면에서 가장 곧은 사물 하나를 찾아 그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늘여 본다. 선이 만나는 점이 어느 높이에 있는지, 그 높이가 누구의 눈인지 보고, 다음으로 그 그림에서 가장 느슨하게 칠해진 부분을 찾아 그 얼룩이 정확히 어디에 놓였는지 본다. 느슨한 붓질과 곧은 선이 한 공간을 나눠 맡고 있다는 것이 보이면, 에이킨스의 그림이 왜 그렇게 조용한지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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