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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0/13 UPDATE

ART / FIELD NOTES

터너의 그림에서 사람은 얼마나 작아질까

1811년 솔트애시의 사람은 셔츠 주름까지 보이지만, 1845년 무렵의 포경선에서는 한 명도 따로 셀 수 없다. 거의 같은 크기의 캔버스 네 점에서 사람의 키를 재 보고, 버크의 숭고로 그 차이를 읽는다.

풍경화 속 사람은 대개 크기를 알려 주는 잣대다. 사람이 서 있으면 집이 얼마나 높은지, 바다가 얼마나 넓은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윌리엄 터너의 그림을 그린 순서대로 늘어놓으면 이 잣대가 점점 줄어들다가 끝내 보이지 않게 된다. 터너의 그림에서 사람은 얼마나 작아질까.

이 글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클리블랜드 미술관이 퍼블릭 도메인으로 공개한 터너의 유화 네 점을 1811년부터 1845년 무렵까지 순서대로 본다. 다 읽고 나면 풍경화 앞에서 두 가지를 스스로 확인할 수 있다. 가장 잘 보이는 사람 하나가 캔버스에서 몇 센티미터인가, 그리고 그 사람을 한 명씩 셀 수 있는가.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1775–1851)는 런던에서 태어나 런던에서 세상을 떠난 영국 화가다. 여기서 볼 네 점 가운데 세 점은 런던 왕립아카데미 전시에 걸렸다.

재기 전에: 네 캔버스는 거의 같은 크기다

크기를 비교하려면 화면이 비슷해야 한다. 미술관 기록을 보면 네 점 모두 세로 약 90cm, 가로 약 121–123cm의 캔버스다. 그래서 이미지에서 사람의 키가 화면 높이의 몇 분의 일인지 재면, 실제 캔버스 위의 센티미터로 거의 그대로 옮길 수 있다.

아래 수치는 미술관이 공개한 이미지를 폭 1600픽셀로 줄인 파일에서, 그림마다 가장 또렷한 인물 한 명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잰 어림값이다. 미술관이 잰 값이 아니며, 몇 밀리미터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1811년 솔트애시: 사람이 장면을 이끈다

메트의 설명에 따르면 이 그림은 터너가 1811년 여름 잉글랜드 서부를 여행한 결과다. 솔트애시는 콘월의 오래된 장터 마을로, 타마 강 건너편 데번포트·플리머스와 수백 년 동안 나룻배로 이어져 왔다.

터너의 《나룻배가 있는 솔트애시, 콘월》. 화면 가운데에 아치가 뚫린 낡고 어두운 건물이 가로로 놓였고, 아치 안만 밝다. 그 앞 누런 진흙 물가에 흰 셔츠를 입고 짐을 멘 남자가 등을 보이고 서 있으며, 옆에서 머릿수건을 쓴 여자가 바구니 곁에 몸을 숙인다. 왼쪽에는 붉은 돛의 배와 짐을 실은 흰 말, 오른쪽 아래에는 빈 나룻배가 물에 떠 있다. 하늘은 누런 안개처럼 흐리다.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 《나룻배가 있는 솔트애시, 콘월》(Saltash with the Water Ferry, Cornwall), 1811년, 캔버스에 유채, 89.9 × 120.7 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Marquand Collection, Gift of Henry G. Marquand, 1889, 89.15.9. 퍼블릭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화면 가운데 아래, 진흙 물가에 흰 셔츠를 입은 남자가 등을 보이고 서 있다. 어깨에는 둥근 짐을 메었고, 옆에서는 머릿수건을 쓰고 초록 치마를 입은 여자가 발치에 바구니를 두고 몸을 숙인다. 남자의 키는 화면 높이의 약 9분의 1, 캔버스 위에서 10cm 남짓이다. 셔츠의 주름, 바지의 어두운 면, 땅에 비스듬히 떨어진 그림자까지 따로 칠해져 있어서 이 두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읽힌다. 왼쪽에는 짐을 실은 흰 말과 돛단배가 있고, 아치 앞에는 붉은 웃옷을 입은 사람과 여러 인물이 모여 있다.

구도도 사람을 향한다. 건물의 어두운 띠가 화면을 가로지르고, 그 한가운데 아치 안만 밝게 비어 있다. 눈은 그 밝은 구멍과 그 앞의 두 인물 사이를 오간다. 하늘은 누런 안개처럼 흐릿한데, 메트는 이 그림의 하늘이 손상되었고 아래쪽 절반은 잘 보존되었다고 적는다. 그러니 하늘의 흐림을 화가의 의도로 읽지 않는 편이 안전하다. 메트가 인용한 1852년 편지에서 비평가 존 러스킨은 이 그림을 소박한 실제 삶에서 시를 찾는 마음이 보는 장면이라고 했다. 이 단계에서 사람은 풍경의 주인이다.

1835년 베네치아: 사람은 흰 붓 자국 몇 개

메트에 따르면 터너는 1819년 첫 베네치아 여행 때 그린 간단한 연필 스케치에서 구도를 가져왔지만, 이 그림은 실제로는 1833년 두 번째 방문의 결과다. 1835년 왕립아카데미 전시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터너의 《살루테 성당 현관에서 본 베네치아》. 화면 위쪽 절반 이상이 파란 하늘과 두껍게 문지른 흰 구름이다. 아래로 청록색 운하가 화면 안쪽으로 뻗고, 왼쪽에는 크림빛 궁전들과 높은 종탑, 오른쪽에는 계단이 있는 하얀 성당 정면이 선다. 운하 가운데에 깃발을 단 범선들과, 흰 셔츠의 사공 둘이 노를 젓는 검은 곤돌라가 떠 있다.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 《살루테 성당 현관에서 본 베네치아》(Venice, from the Porch of Madonna della Salute), 1835년경, 캔버스에 유채, 91.4 × 122.2 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Bequest of Cornelius Vanderbilt, 1899, 99.31. 퍼블릭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화면의 위쪽 절반 이상이 하늘이다. 파랑 위에 흰 물감을 두껍게 문질러 구름을 만들었고, 그 흰색이 아래로 내려오며 건물과 물로 이어진다. 오른쪽 성당 정면과 계단, 왼쪽 궁전들의 벽이 모두 비슷한 크림빛이어서 건물은 단단한 덩어리라기보다 빛을 받는 면처럼 보인다. 물은 청록색이고, 건물 밑동이 물에 비치는 자리에서 벽과 물의 경계가 녹는다. 메트도 궁전의 기단이 섬세한 반영으로 물에 섞여든다고 설명한다.

사람은 어디 있을까. 가운데 검은 곤돌라 위에서 흰 셔츠의 사공 둘이 노를 젓는다. 확대해 보면 셔츠는 흰 물감 몇 번, 허리띠는 노란 점 하나, 얼굴은 살구색 얼룩이다. 선 사공의 키는 화면 높이의 약 20분의 1, 캔버스에서 4cm쯤이다. 오른쪽 성당 계단 위의 사람들은 그보다 작아서 분홍·검정·흰 점으로 찍혀 있다. 그래도 이 사람들은 위험 앞에 있지 않다. 곤돌라의 검은 선체와 그 그림자가 화면에서 가장 어두운 자리여서, 눈은 오히려 이 작은 배로 먼저 간다. 사람은 작아졌지만 넓은 빛 속에서 아직 쉼표 노릇을 한다.

1835년 국회의사당 화재: 사람은 군중이라는 덩어리

1834년 10월 16일 밤, 런던의 국회의사당이 불탔다. 클리블랜드 미술관 설명에 따르면 사람들이 템스 강가에 모여 이 광경을 지켜보았고, 처음에는 썰물 탓에 물을 끌어 올리기 어려워 불길이 몇 시간 동안 잡히지 않았다. 터너는 이듬해 이 그림을 왕립아카데미에 냈다.

터너의 《상원과 하원의 화재, 1834년 10월 16일》. 화면 가운데의 건물에서 주황·진홍·노랑의 불길과 연기가 왼쪽 위로 비스듬히 치솟아 하늘을 덮는다. 그 아래 다리의 아치들이 불빛에 밝고, 강물에는 붉은 반영이 아래로 길게 내려온다. 왼쪽 아래 강둑에는 지켜보는 사람들의 머리가 적갈색 덩어리로 겹쳐 있고, 오른쪽 아래 강에는 사람을 실은 배들이 불 쪽으로 나아간다.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 《상원과 하원의 화재, 1834년 10월 16일》(The Burning of the Houses of Lords and Commons, 16 October 1834), 1835년, 캔버스에 유채, 92 × 123.2 cm. 클리블랜드 미술관, Bequest of John L. Severance, 1942.647. CC0(Cleveland Museum of Art Open Access).

화면은 불길이 차지한다. 주황과 진홍, 레몬빛 노랑이 화면 가운데에서 왼쪽 위로 비스듬히 치솟아 하늘 절반을 덮는다. 같은 색이 강물에 비쳐서, 다리 아래 수면에 붉은 기둥이 아래로 한 번 더 선다. 위로 솟은 불과 아래로 내려온 반영이 화면을 세로로 가르는 셈이다. 클리블랜드 미술관은 터너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되 불길의 높이를 과장했다고 설명한다.

사람은 화면 아래 가장자리에만 있다. 왼쪽 아래 강둑에는 머리 수십 개가 적갈색 덩어리로 겹쳐 있다. 확대하면 둥근 머리와 어깨의 윤곽은 보이지만 눈·코·입은 없고, 한 사람이 끝나는 자리와 다음 사람이 시작하는 자리가 붓 자국 속에 섞여 있다. 오른쪽 아래에는 배 위에 선 사람들이 빨강·노랑·파랑의 짧은 점으로 찍혀 있는데, 선 사람 하나의 키가 화면 높이의 약 40분의 1, 2cm 남짓이다. 미술관은 이 배들이 불길 쪽으로 향하는 모습으로 화재와 싸우는 분투를 기록했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사람은 더 이상 한 명씩 그려지지 않는다. 지켜보는 군중이라는 하나의 어두운 띠다.

1845년 무렵 포경선: 사람을 셀 수 없을 때

메트에 따르면 터너는 일흔 살이던 1845년 왕립아카데미 전시에 이 그림을 냈다. 이 그림과 런던 테이트에 있는 다른 세 점은 부분적으로 토머스 빌의 책 『향유고래의 자연사』(1839)에서 영감을 받았다. 메트는 이 그림을 칭찬한 사람이나 깎아내린 사람이나 앞쪽에서 요동치는 고래와 보트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데에는 동의했다고 전한다.

터너의 《포경선》. 화면 거의 전부가 크림빛 회색의 안개와 물보라다. 가운데에 흰 돛을 단 범선 한 척이 흐릿한 윤곽으로 떠 있고, 왼쪽 아래에는 꼭대기에 붉은 기가 비치는 짙은 갈색 덩어리가 물 위로 솟아 있다. 범선 오른쪽 아래에는 주황과 적갈색의 뾰족한 형체들이 엉켜 있다. 하늘과 바다 사이의 수평선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 《포경선》(Whalers), 1845년경, 캔버스에 유채, 91.8 × 122.6 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Catharine Lorillard Wolfe Collection, Wolfe Fund, 1896, 96.29. 퍼블릭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화면의 거의 전부가 크림빛 회색이다. 하늘과 바다와 물보라가 비슷한 색, 비슷한 붓질로 이어져서 수평선을 찾기 어렵다. 그 가운데 범선 한 척이 흰 돛의 윤곽으로 떠오르고, 왼쪽 아래에는 짙은 갈색 덩어리가 물 위로 솟아 있으며 그 꼭대기에 붉은 기가 비친다. 제목과 메트의 설명을 함께 놓으면 고래로 읽히지만, 그림만으로는 단정하기 어렵다. 범선 오른쪽 아래에는 주황·적갈색의 뾰족한 형체들이 엉켜 있는데, 이것이 보트들일 것이다.

이 형체들을 확대해 보아도 사람 한 명을 따로 떼어 낼 수 없다. 뱃전과 노와 몸이 같은 주황 붓질 안에서 섞여 있다. 그러니 이 그림에서는 사람의 키를 잴 수가 없다. 1811년에는 셔츠 주름까지 그렸던 화가가, 30여 년 뒤에는 사람을 형체 없는 색의 엉킴 속에 넣었다. 이 화면에서 크기를 가늠할 잣대는 범선 한 척과 어두운 덩어리뿐이고, 그 둘마저 안개 속에서 경계가 흐리다.

왜 작게 그렸을까: 버크의 숭고로 보기

사람을 작게 그리는 효과를 설명할 때 자주 불려 나오는 책이 에드먼드 버크가 1750년대에 펴낸 『숭고와 아름다움의 관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다. 버크는 고통과 위험의 관념을 불러일으키는 것, 곧 어떤 식으로든 두려운 것을 숭고의 원천으로 보았다. 그리고 여러 조건 가운데 두 가지를 따로 다룬다. 하나는 크기다. 거대한 크기는 숭고의 강력한 원인이라고 그는 쓴다. 다른 하나는 흐림이다. 무언가를 아주 두렵게 만들려면 대개 흐릿함이 필요하며, 위험의 범위를 다 알고 눈이 거기에 익숙해지면 두려움이 상당 부분 사라진다는 것이다.

네 그림을 이 두 조건에 비추면 차이가 정리된다. 솔트애시의 사람은 크고 또렷해서 두려움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베네치아의 사람은 작지만 위험 앞에 있지 않다. 여기서 작은 크기는 숭고가 아니라 넓고 고요한 빛을 보여 주는 장치다. 국회의사당 화재에서는 거대한 불길 앞에 사람이 작은 덩어리로 줄어든다. 크기의 조건이 들어선 것이다. 그리고 포경선에서는 크기에 흐림이 더해진다. 고래가 얼마나 큰지, 보트가 얼마나 위태로운지, 그 안에 사람이 몇 명인지 끝내 알 수 없다. 버크의 말로 하면 범위를 알 수 없는 위험이다.

터너가 버크를 읽고 이 생각을 그림에 적용했다는 근거를 이 글에서 확인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버크는 화가의 의도를 증명하는 열쇠가 아니라, 같은 크기의 캔버스에서 사람이 왜 이렇게 다르게 느껴지는지를 말로 옮기는 도구로만 쓴다. 클리블랜드 미술관도 화재 그림이 자연의 파괴적인 힘 앞에 선 인간의 무력함을 표현한다고 설명하는데, 버크와 같은 방향의 읽기다.

그림 앞에서 해 볼 것

다음에 풍경화를 볼 때 가장 잘 보이는 사람 하나를 찾아 화면 높이의 몇 분의 일인지 어림해 보자. 그리고 그 사람을 옆 사람과 구분해 셀 수 있는지 확인한다. 사람이 크고 셀 수 있으면 그림은 사람의 이야기다. 작지만 셀 수 있으면 사람은 넓은 공간을 재는 잣대다. 더는 셀 수 없게 되었다면, 그 그림은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무언가를 보여 주려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터너의 네 그림에서는 이 세 경우가 1811년부터 1845년 무렵까지 차례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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