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그림 앞에 서면 파도부터 보게 된다. 흰 물보라가 가장 크고 밝으니 당연하다. 그런데 윈슬로 호머의 말년 바다 그림에서는 한 가지를 먼저 찾아보면 그림이 다르게 읽힌다. 화면 안에서 보는 사람이 딛고 설 수 있는 자리, 곧 가장 가까운 단단한 면이 어디에 있는지다.
이 글에서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공개한 호머의 유화 네 점을 같은 순서로 본다. 먼저 발밑의 바위를 찾고, 다음에 수평선이 화면의 어느 높이에 있는지 보고, 마지막으로 그 둘 사이를 무엇이 채우는지 본다. 이 세 가지를 읽고 나면 다른 바다 그림 앞에서도 화가가 나를 어디에 세워 두었는지 스스로 짚어 볼 수 있다.
네 점은 모두 1894년부터 1896년 사이에 그려졌다. 메트의 설명에 따르면 호머는 생애 마지막 30년을 미국 메인주의 프라우츠넥에서 살았고, 작업실에서 보이는 해안의 바위와 부서지는 파도를 주된 주제로 삼았다. 그는 1836년 보스턴에서 태어나 1910년 프라우츠넥에서 세상을 떠났다.
발밑의 바위: 《북동풍》

《북동풍》은 가로 127cm의 큰 캔버스다. 화면 아래에는 어두운 바위 턱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내려가며 깔려 있다. 바위는 보라와 검정에 가까운 색을 넓은 붓으로 결을 따라 눕혀 칠했고, 그 사이사이에 주황과 붉은 점이 박혀 있다. 이 턱은 화면 오른쪽 끝까지 가지 않고 흰 거품 속으로 끊긴다.
바위 바로 위, 화면 왼쪽 3분의 1은 물보라가 차지한다. 물보라는 화면 위 가장자리에 닿을 만큼 높이 솟아, 그 뒤의 하늘과 수평선을 가린다. 수평선은 물보라 오른쪽에서만 흐린 띠로 드러나고, 위에서 대략 3분의 1쯤 되는 높이에 있다. 바다는 청록과 짙은 초록 위에 흰 거품의 줄이 그물처럼 얽힌 면으로 칠해졌다.
메트의 작품 설명에는 이 그림의 중요한 사실이 하나 적혀 있다. 1895년 처음 전시했을 때는 왼쪽 아래 바위 위에 웅크린 사람 두 명이 있었고, 호머는 1900년까지 그들을 지우고 물보라를 키웠다. 지금 그 바위 턱 위에는 아무도 없다.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은 그림을 보는 사람뿐이다.
양옆의 바위 사이: 《캐넌 록》

《캐넌 록》은 한 변이 101.6cm인 정사각형이다. 여기서는 바위가 아래 전체를 받치지 않는다. 왼쪽 아래와 오른쪽 아래에 검은 바위 덩어리가 하나씩 있고, 그 사이로 물길이 화면 아래쪽을 향해 좁아진다. 보는 사람의 눈은 두 바위 사이 틈을 내려다보는 높이에 있다.
수평선은 위에서 3분의 1이 채 안 되는 높이에 있고, 그 위는 거의 무늬 없는 회색 하늘이다. 수평선 가까이 화면 가운데에서 약간 왼쪽에 파도 하나가 하얗게 부서지고 있다. 그 아래의 바다는 짧은 붓질로 쪼개져 있는데, 앞쪽의 물결은 붓 자국이 크고 멀어질수록 작고 촘촘해진다. 원근을 선으로 긋지 않고 붓질의 크기로 만든 셈이다.
발밑이 거품일 때: 《메인 해안》

《메인 해안》에서는 바위가 섬처럼 떨어져 있다. 왼쪽 아래와 오른쪽에 바위가 몇 덩어리 있지만, 그 사이와 화면 아래 가장자리 대부분은 흰 거품으로 덮였다. 거품은 흰 물감을 두텁게 끌어 칠해 표면이 도드라진다. 앞의 두 그림과 달리 보는 사람의 발 바로 앞에 이어진 바위 면이 없다.
왼쪽의 물보라는 왼쪽 바위 뒤에서 위로 솟아 화면 절반 높이를 훌쩍 넘는다. 수평선은 네 점 가운데 가장 높아서 위에서 4분의 1 안팎에 흐리게 걸려 있고, 하늘과 먼바다가 비슷한 회색이라 경계가 거의 녹아 있다. 메트는 이 그림이 호머가 파리 박람회에 내보내 호평을 받은 야심작 네 점 가운데 하나였다고 적는다.
밤의 바위: 《달빛, 우드 아일랜드 등대》

《달빛, 우드 아일랜드 등대》는 밤 장면이다. 달은 화면 위쪽 가운데보다 약간 왼쪽의 구름 뒤에 가려 있고, 그 아래 바다에 밝은 길이 난다. 수평선은 위에서 약 3분의 1 높이에서 곧게 지나가고, 그 오른쪽 끝 가까이에 작은 붉은 점이 하나 찍혀 있다. 제목이 등대를 가리키니, 이 점은 먼 불빛으로 읽힌다.
가장 밝은 곳은 뜻밖에 하늘이 아니라 앞쪽의 바위다. 화면 아래의 검은 바위 위에 연한 노랑과 흰색이 짧고 두껍게 얹혀 있다. 달빛이 젖은 바위 면에 걸린 자리들이다. 메트는 호머의 첫 전기 작가가 전한 일화를 소개한다. 1894년 여름 저녁, 호머가 화구를 챙겨 바위를 타고 물가로 내려갔고, 이 그림은 그 충동과 네다섯 시간 작업의 결과였다는 것이다. 네 점 가운데 화가가 선 자리를 짐작할 기록이 있는 그림은 이것뿐이다.
무서운 것을 볼 수 있는 거리
네 그림을 나란히 놓으면 호머가 보는 사람을 세워 두는 자리가 조금씩 달라진다. 《북동풍》은 넓은 바위 턱을 주고, 《캐넌 록》은 양옆의 바위 사이에 세우고, 《메인 해안》은 발밑을 거품으로 채우고, 《달빛》은 빛이 걸린 바위를 가장 앞에 둔다. 그리고 어느 그림에도 지금은 사람이 없다.
18세기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는 1750년대 후반에 펴낸 『숭고와 아름다움의 관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에서 숭고를 고통과 위험의 관념에서 찾았다. 그는 위험이 너무 가까이 닥치면 그저 끔찍할 뿐이지만,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면 즐거움이 될 수 있다고 썼다. 호머의 바위 턱은 바로 그 거리 역할을 한다. 물보라는 화면 위 끝까지 솟지만, 보는 사람은 그보다 한 걸음 뒤의 단단한 면 위에 있다.
《북동풍》에서 사람 둘을 지운 일도 이렇게 보면 뜻이 생긴다. 그림 속 사람은 파도의 크기를 재는 자가 되고, 보는 사람은 그들을 지켜보는 구경꾼이 된다. 사람을 지우면 그 바위 위의 자리는 보는 사람에게 넘어온다. 메트가 옮긴 1901년의 한 비평은 이 그림을 두고 바위의 힘, 바다의 무게 있는 움직임, 그리고 "하찮은 인간"의 흔적이 없는 넓은 자연의 공기를 꼽았다.
메트는 이 말년의 바다 그림들이 20세기 초 메인으로 몰려든 모더니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고 설명한다. 이야기와 인물을 덜어 내고 바위, 물, 대기만 남긴 화면이라는 점에서, 호머의 말년 작업은 19세기 미국 사실주의의 끝자락이자 그다음 세대가 출발한 자리였다.
다음 바다 그림 앞에서
다음에 바다 그림을 보면 파도보다 먼저 화면 아래 가장자리를 보자. 거기에 단단한 면이 있는지, 있다면 수평선까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손가락으로 재어 보는 것이다. 발밑의 면과 수평선 사이의 거리가 그 그림이 보는 사람에게 허락한 안전의 크기이고, 거기서 무서움이 즐거움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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