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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0/10 UPDATE

ART / FIELD NOTES

샤르댕의 그림은 얼마나 물러서야 제 모양이 될까

장 시메옹 샤르댕이 1728년부터 1735년 무렵 사이에 그린 네 점을 멀리서 한 번, 가까이서 한 번 보며, 물건이 붓 자국으로 흩어졌다가 다시 물건이 되는 거리를 따라갑니다.

샤르댕의 정물 앞에 서면 은그릇은 은그릇이고 물잔에는 물이 담겨 있다. 그런데 한 걸음씩 다가가면 어느 순간 그 물건이 사라지고 물감 자국만 남는다. 그렇다면 그림은 어디에 있는 걸까. 캔버스 위 물감에 있을까, 아니면 몇 걸음 떨어진 우리 눈 쪽에 있을까.

이 글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클리블랜드 미술관이 퍼블릭 도메인으로 공개한 장 시메옹 샤르댕의 유화 네 점을 그린 순서대로 놓고, 각 그림을 멀리서 한 번, 확대해서 한 번 본다. 다 읽고 나면 샤르댕의 그림 앞에서 한 물건을 골라 그것이 붓 자국으로 흩어지는 거리와 다시 물건으로 모이는 거리를 스스로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물감이 두꺼운 곳과 얇은 곳이 어떤 물건에 쓰였는지 구분할 수 있다.

장 시메옹 샤르댕(1699–1779)은 파리에서 태어나 평생 파리에서 살았다. 메트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왕립 회화조각아카데미의 정식 교육을 받지 않았고, 밑그림 습작 없이 캔버스 위에서 바로, 천천히 그렸다. 1728년 동물과 과일을 그리는 화가로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고, 1733년부터는 인물이 있는 풍속화도 그렸다. 말년에 시력이 약해져 유화를 그만둔 뒤에는 파스텔로 얼굴을 그렸다.

《은 수프 그릇》: 멀리서는 사냥물, 가까이서는 가로 붓질

《은 수프 그릇》은 메트가 양식으로 보아 1728년에서 1730년 무렵으로 잡는 그림으로, 아카데미에 들어간 바로 그 시기의 작품이다. 가로 108센티미터의 큰 화면이다.

장 시메옹 샤르댕의 《은 수프 그릇》. 어두운 돌 선반 위 오른쪽에 뚜껑 위에 오렌지를 얹은 은 수프 그릇이 있고, 그 앞에 죽은 산토끼가 뒷다리를 선반 밖으로 늘어뜨린 채 누워 있으며, 그 옆에 자고새 한 마리가 있다. 왼쪽 아래에서 흰 바탕에 얼룩무늬가 있는 고양이가 몸을 낮추고 사냥물을 올려다본다. 선반 앞쪽에 빨간 사과, 오른쪽에 초록 사과와 배, 밤 몇 알이 있다.
장 시메옹 샤르댕, 《은 수프 그릇》(The Silver Tureen), 1728–30년경, 캔버스에 유채, 76.2 × 108 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Fletcher Fund, 1959, 59.9. 퍼블릭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멀리서 보면 이야기가 바로 읽힌다. 어두운 돌 선반 위에 은 수프 그릇이 서 있고, 그 앞에 죽은 산토끼와 자고새가 놓였다. 토끼의 뒷다리는 선반 밖으로 늘어졌고, 왼쪽 아래 구석에서 고양이가 몸을 낮춘 채 사냥물을 올려다본다. 메트의 설명대로 고양이의 유연하게 웅크린 몸이 굳어 가는 토끼와 새와 맞서고, 빨간 사과와 초록 사과, 배가 선반 앞쪽에 흩어져 균형을 잡는다.

원본 이미지를 크게 확대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은그릇의 몸통은 매끈한 금속면이 아니라 옅은 회색과 흰색의 넓은 가로 붓질이 층층이 지나간 자리다. 손잡이는 밝은 물감을 두툼하게 얹은 굵은 선 몇 개뿐이고, 그릇 아래쪽 배에는 붉은 얼룩이 번져 있다. 메트는 이것을 과일 색이 은에 비친 것이라고 적는데, 가까이서 보면 비친 상이라기보다 빨간 물감을 문질러 놓은 자리에 가깝다. 토끼 털도 같다. 황토색, 크림색, 갈색의 마른 붓질이 캔버스 결 위로 끌려가면서 군데군데 끊겨 있고, 수염은 가늘고 밝은 선 몇 가닥으로 그어져 있다. 털 한 올 한 올을 그린 곳은 없다.

《비눗방울》: 테두리 하나와 흰 점 두 개

메트의 해설에 따르면, 당대의 수집가 마리에트는 샤르댕이 처음 그린 인물화가 비눗방울을 부는 젊은이의 그림이었다고 적었다. 다만 메트는 1733년 작으로 읽히는 다른 인물화가 더 이를 수도 있다고 덧붙인다. 이 주제의 그림은 메트,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워싱턴 국립미술관에 한 점씩 남아 있고, 메트는 물감이 두꺼운 이 그림을 셋 가운데 가장 이른 것으로 본다. 17세기 네덜란드 그림에서 비눗방울은 덧없는 삶을 암시하는 소재였지만, 샤르댕이 그런 뜻을 담으려 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장 시메옹 샤르댕의 《비눗방울》. 갈색 옷에 흰 소매를 한 젊은이가 돌 창턱에 팔을 걸치고 몸을 숙여 가는 대롱으로 비눗방울을 분다. 창턱 아래로 커다란 투명한 방울이 매달려 있다. 그 뒤로 깃털 달린 모자를 쓴 어린아이의 얼굴이 창턱 위로 반쯤 보이고, 왼쪽 창턱에는 비눗물이 든 유리잔과 대롱이, 왼쪽 위에는 잎사귀가 있다.
장 시메옹 샤르댕, 《비눗방울》(Soap Bubbles), 1733–34년경, 캔버스에 유채, 61 × 63.2 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Wentworth Fund, 1949, 49.24. 퍼블릭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젊은이는 돌 창턱에 팔을 걸치고 몸을 숙여 대롱을 문다. 대롱 끝에는 커다란 방울이 창턱 아래로 매달려 있다. 뒤에서는 깃털 모자를 쓴 어린아이가 창턱 위로 눈만 내놓고 방울을 본다. 왼쪽 창턱에는 비눗물이 담긴 유리잔이 있다. 화면의 시선은 젊은이의 눈, 대롱, 방울로 이어지고, 아이의 눈이 다시 방울로 모인다.

이 방울을 확대해 보면 거의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다. 푸른 회색과 옅은 분홍의 가는 호가 둥근 테두리를 이루고, 왼쪽 위와 오른쪽 아래에 흰 물감이 짧게 두 번 찍혀 있을 뿐이다. 방울 안쪽은 뒤쪽 창턱 벽과 같은 갈색 물감이고, 그 사이로 캔버스 결이 비친다. 창턱 아래쪽 경계선도 방울 안으로 그대로 지나간다. 그런데 몇 걸음 물러서면 이 몇 개의 표시가 공기를 머금고 부풀어 오른 투명한 공이 된다. 방울은 물감 안에 있지 않다. 물감은 테두리와 빛 두 점만 주고, 나머지는 보는 사람이 채운다.

《부엌 도구》: 작은 화면, 두꺼운 흰 천

클리블랜드 미술관의 《리크, 생선, 달걀이 있는 부엌 도구》는 1734년 무렵 그림이고, 가로 40.7센티미터로 앞의 두 점보다 훨씬 작다. 클리블랜드의 설명에 따르면 샤르댕은 1730년 무렵부터 이런 작고 간소한 부엌 정물을 그리기 시작했고, 같은 물건을 거듭 쓰면서 위치를 조금씩 옮기거나 하나를 더하고 빼며 균형을 맞추었다.

장 시메옹 샤르댕의 《리크, 생선, 달걀이 있는 부엌 도구》. 갈색 벽 앞 돌 선반 위에 왼쪽부터 리크, 대롱 모양 손잡이가 달린 어두운 갈색 냄비, 뚜껑이 비스듬히 열린 구리 솥, 흰 천을 덮은 납작하고 둥근 것, 주황색 둥근 조각, 흰 달걀 두 개, 나무 절구와 공이가 놓여 있다. 선반 앞면에 서명이 있다.
장 시메옹 샤르댕, 《리크, 생선, 달걀이 있는 부엌 도구》(Kitchen Utensils with Leeks, Fish, and Eggs), 1734년경, 캔버스에 유채, 32.2 × 40.7 cm. 클리블랜드 미술관, Leonard C. Hanna Jr. Fund, 1980.37. CC0(Cleveland Museum of Art Open Access).

선반 위에 물건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놓였다. 리크, 손잡이가 달린 어두운 냄비, 뚜껑이 열린 구리 솥, 흰 천을 덮은 납작하고 둥근 것, 주황색 둥근 조각, 달걀 두 개, 나무 절구. 높이가 다른 물건이 높고 낮게 번갈아 서서, 구리 솥이 가운데 높은 점을 잡고 양쪽이 낮아진다. 배경은 갈색 벽 하나이고 장식이 없다.

확대해 보면 흰 천에서 물감이 가장 두껍다. 마른 흰 물감을 끌듯 발라 가장자리가 부스러지고, 물감이 작은 이랑처럼 솟아 있다. 천이 접힌 곳마다 회색과 푸른 기가 도는 그림자가 이 두꺼운 흰색 사이로 얇게 끼어 있다. 반대로 구리 솥은 붉은 갈색이 비교적 고르게 깔리고, 그 위에 밝은 줄 몇 개만 세로로 그어졌다. 같은 화면 안에서도 물건마다 물감의 두께와 끌린 방향이 다르다.

《청어가 있는 정물》: 얇은 물잔, 거친 빵

《청어가 있는 정물》은 1735년 무렵 그림이고 세로 41센티미터의 작은 화면이다. 클리블랜드의 해설은 이 그림을 두고, 샤르댕이 섬세한 글레이즈와 거칠게 끌어 바른 두꺼운 물감을 섞어 썼으며, 그림을 가까이서 들여다볼 것을 충분히 예상했다고 쓴다. 그는 작업하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지 않은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장 시메옹 샤르댕의 《청어가 있는 정물》. 벽에 파인 아치형 벽감 앞 돌 선반이다. 위에서 짚으로 묶은 청어 두 마리가 매달려 있고, 오른쪽에 구리 냄비가 안쪽의 옅은 면을 보이며 벽에 기대 서 있다. 왼쪽에 파란 무늬가 있는 흰 도기 주전자, 가운데에 빵 덩이와 물이 담긴 유리잔, 오른쪽에 마늘 한 통과 작은 나무 용기가 있고, 왼쪽 선반 끝에 버찌 몇 알이 걸쳐 있다.
장 시메옹 샤르댕, 《청어가 있는 정물》(Still Life with Herrings), 1735년경, 캔버스에 유채, 41 × 33.6 cm. 클리블랜드 미술관, Leonard C. Hanna Jr. Fund, 1974.1. CC0(Cleveland Museum of Art Open Access).

벽에 파인 아치형 벽감 앞에 돌 선반이 있다. 위에서 짚으로 묶은 청어 두 마리가 매달려 화면 한가운데를 세로로 가르고, 그 오른쪽에 구리 냄비가 안쪽의 옅은 면을 보이며 벽에 기대 있다. 왼쪽에는 파란 무늬가 있는 흰 도기 주전자, 가운데 아래에는 빵과 물잔이 놓였다. 버찌 한 알은 선반 끝에 걸려 아래로 늘어졌다.

확대하면 두 가지 칠이 나란히 있다. 물잔은 옅은 회색의 얇은 막으로, 그 막을 통해 뒤에 놓인 빵이 그대로 비친다. 잔 테두리에 흰 붓질 몇 개, 물 높이에 옅은 가로줄 하나가 있을 뿐이다. 바로 옆 빵 껍질은 정반대다. 황토색과 흰색 물감이 거칠게 끌려 표면이 부스러지고, 물감 알갱이가 오돌토돌하게 남아 있다. 투명한 것은 얇게, 거친 것은 거칠게. 물건의 표면과 물감의 표면이 같은 성질을 띤다.

디드로의 말: 다가가면 흐트러지고, 물러서면 다시 생긴다

샤르댕이 살아 있을 때 이미 이 경험을 글로 남긴 사람이 있다. 철학자 드니 디드로는 1763년 파리 살롱 전시평에서 샤르댕의 작은 정물들을 두고, 이 마법은 도무지 알 수 없다고 썼다. 두꺼운 물감 층이 겹겹이 얹혀 그 효과가 아래에서 위로 배어 나오고, 어떤 곳은 화폭에 입김을 불어 놓은 것 같고, 어떤 곳은 가벼운 거품을 던져 놓은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다가가면 모든 것이 흐트러지고 납작해지며 사라지고, 물러서면 모든 것이 다시 생겨나 되살아난다.

디드로가 이 글에서 본 것은 1763년 살롱에 걸린 다른 그림들이고, 이 글의 네 점은 아니다. 그래도 그 문장은 네 점에 그대로 들어맞는다. 은그릇의 가로 붓질, 비눗방울의 테두리와 흰 점, 흰 천의 부스러진 물감, 물잔의 얇은 막은 모두 가까이서는 물감이고, 멀리서는 물건이다. 디드로는 같은 글에서 샤르댕이 팔레트에서 개는 것은 흰색, 빨간색, 검은색이 아니라 물건의 실체 자체이며, 공기와 빛을 붓끝에 찍어 화폭에 붙인다고도 썼다.

이것을 덜 그린 것으로 볼 수는 없다. 표시는 몇 개 되지 않아도 물러서면 물건이 빠짐없이 생겨난다. 물건을 완성하는 마지막 일을 보는 사람의 거리에 맡긴 셈이다. 이 글의 이미지를 휴대폰 화면 폭으로 줄여 보면 비눗방울도 물잔도 곧바로 물건으로 읽힌다. 화면을 줄이는 일은 물러서는 일과 같은 효과를 낸다. 그리고 클리블랜드의 해설처럼 샤르댕은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도 예상했다. 가까이서는 물감이 물건과 같은 성질을 띠도록, 멀리서는 물감이 물건으로 모이도록. 한 화면이 두 거리에서 각각 다른 것을 보여 준다.

샤르댕 그림 앞에서 해 볼 것

샤르댕의 그림을 보게 되면, 먼저 한 물건을 고른다. 은그릇, 물잔, 흰 천, 무엇이든 좋다. 그 물건이 물감 자국으로 흩어질 때까지 천천히 다가간 다음, 다시 천천히 물러서며 그것이 물건으로 돌아오는 순간에 멈춘다. 그 거리에서 그 물건이 그림이 된다. 미술관 웹사이트의 확대 이미지로도 똑같이 해 볼 수 있다. 그다음 같은 그림 안에서 물감이 두껍게 솟은 곳과 얇게 비치는 곳을 찾아, 각각 어떤 물건에 쓰였는지 짝지어 본다. 샤르댕의 그림에서는 물건의 생김새만큼 그 표면의 성질이 물감에 옮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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