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IELD NOTES

모네의 그림에서 사물의 테두리는 언제 사라질까

클로드 모네가 1864년부터 말년까지 그린 네 점을 연대순으로 놓고, 꽃잎과 얼굴과 절벽과 연잎의 테두리가 어디서 붓 자국으로 풀리는지 따라갑니다.

모네라는 이름을 들으면 대개 흐릿하게 번지는 수련부터 떠오른다. 그런데 모네가 처음부터 사물의 테두리를 흐리게 그린 것은 아니다. 1864년의 모네는 꽃잎 한 장 한 장의 가장자리를 또렷하게 세웠다. 그 테두리는 언제, 어디서부터 풀리기 시작했을까.

이 글은 클리블랜드 미술관이 CC0로 공개한 모네의 그림 네 점을 연대순으로 놓고, 각 그림에서 사물과 그 주변이 만나는 가장자리를 따라간다. 다 읽고 나면 인상주의 그림 앞에서 가장 가까운 사물과 가장 먼 사물의 테두리를 견주어, 화가가 그 그림을 얼마나 떨어진 눈으로 보게 했는지 스스로 짚어 볼 수 있다.

클로드 모네(1840–1926)는 파리에서 태어나 지베르니에서 세상을 떠났다. 네 점은 1864년의 정물, 1870년 전후 아르장퇴유 집의 겨울, 1882년 노르망디 해안, 그리고 말년 지베르니 연못의 수련이다.

기준 하나: 리글의 "가까이 보기"와 "멀리 보기"

빈의 미술사학자 알로이스 리글(1858–1905)은 1901년에 펴낸 『후기 로마의 미술 공예』에서 고대 미술의 흐름을 보는 거리의 변화로 설명했다. 이집트 부조는 사물을 손으로 더듬듯 가까이에서 보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형태는 평평한 바탕 위에 날카로운 윤곽으로 떨어져 나오고, 공간은 거의 없다. 그리스 미술은 그 중간, 보통 거리에서 보는 눈으로 그림자와 깊이를 조금 들였다. 후기 로마 미술에 이르면 멀리서 보는 눈이 앞서, 사물은 빛과 그림자의 얼룩으로 주변 공간과 섞인다. 리글은 앞의 것을 처음에 "촉각적"이라 불렀다가 나중에 "햅틱"이라는 말을 택했고, 뒤의 것은 "시각적(옵틱)"이라 불렀다.

리글이 다룬 것은 고대 미술이고, 그는 모네의 말년 수련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여기서는 그의 짝 개념을 그림을 재는 자로만 빌린다. 질문은 간단하다. 이 그림은 사물을 손끝으로 만지듯 보게 하는가, 아니면 몇 걸음 떨어져 빛으로만 보게 하는가.

1864년: 꽃잎마다 테두리가 있다

클로드 모네의 《봄꽃》. 어두운 갈색 배경 앞 탁자 위에 꽃이 가득하다. 뒤쪽 위에 붉은 제라늄, 가운데에 분홍 수국 화분, 왼쪽 아래 바구니에 흰 꽃과 연보라 라일락, 오른쪽에 파란 꽃, 앞쪽 탁자 위에 흰 작약 여러 송이와 붉은 꽃 두 송이가 놓여 있다. 오른쪽 위 구석에 서명이 있다.
클로드 모네, 《봄꽃》(Spring Flowers), 1864년, 캔버스에 유채, 116.8 × 90.5 cm. 클리블랜드 미술관, Gift of the Hanna Fund, 1953.155. CC0(Cleveland Museum of Art Open Access).

클리블랜드 미술관은 이 정물을 모네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많이 그리기 시작한 첫해의 작품으로 소개한다. 어두운 배경 앞에서 뒤쪽의 제라늄으로부터 수국 화분, 바구니에 담긴 라일락, 다 핀 작약이 아래로, 바깥으로 쏟아진다. 오른쪽 위 구석에는 서명과 64라는 연도가 적혀 있다.

가까이 다가가 앞쪽의 흰 작약을 보자. 꽃잎 하나가 굵은 붓질 한 번이다. 흰 물감을 듬뿍 묻힌 붓이 꽃잎의 굽은 모양을 따라 휘어지고, 붓이 멈춘 자리에서 꽃잎의 끝이 생긴다. 꽃 전체의 둘레도 분명하다. 작약 아래 탁자에는 짙은 그림자가 깔려 있어, 흰 꽃과 갈색 탁자 사이에 끊김 없는 경계가 그어진다. 잎사귀도 저마다 윤곽이 있고, 라일락 바구니는 엮은 줄기의 결까지 하나하나 보인다.

붓질은 이미 활달하지만, 그 붓질은 모두 사물 안쪽에서 사물을 빚는 데 쓰인다. 리글의 말로 하면 이 그림은 아직 가까이 보는 그림이다. 눈은 꽃잎을 하나씩 더듬고, 어두운 배경은 그 테두리를 돋보이게 하는 평평한 바탕 노릇을 한다.

1870년 전후: 안쪽은 또렷하고 바깥은 풀린다

클로드 모네의 《붉은 머릿수건》. 회색 실내에서 유리문 밖을 바라본 장면이다. 양쪽으로 젖힌 흰 커튼 사이, 검은 문틀 너머 눈 덮인 마당에 붉은 두건과 어두운 외투 차림의 여인이 서서 안쪽을 본다. 뒤에는 흰 점이 흩어진 초록 나무가 있고, 아래쪽에 문 아랫판과 나무 바닥이 보인다.
클로드 모네, 《붉은 머릿수건》(The Red Kerchief), 1868–73년경, 천에 유채, 99 × 79.8 cm. 클리블랜드 미술관, Bequest of Leonard C. Hanna Jr., 1958.39. CC0(Cleveland Museum of Art Open Access).

클리블랜드 미술관에 따르면 눈 내린 날, 모네의 첫 아내 카미유가 아르장퇴유 집의 유리문 앞을 지나가는 장면이다. 모네는 이 그림을 평생 곁에 두었다고 한다.

이 그림에는 거리가 둘이다. 가까운 쪽은 방 안이다. 검은 문틀의 세로대와 가로대, 회색 벽, 문 아랫판의 네모난 칸이 곧고 분명한 가장자리를 가진다. 양쪽으로 젖힌 흰 커튼도 길게 내리그은 붓질로 접힌 결을 따라간다. 먼 쪽은 유리 너머다. 나무는 초록 바탕 위에 흰 물감을 툭툭 얹은 얼룩이고, 그 흰 얼룩이 눈송이인지 나뭇잎에 쌓인 눈인지 가려 그리지 않았다. 눈 덮인 마당은 넓은 흰 면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카미유의 얼굴이다. 크게 확대해 보면 얼굴은 살빛 타원 하나에 눈과 코 자리를 짚은 어두운 점 몇 개뿐이다. 붉은 두건은 빨강을 몇 번 휘둘러 칠한 면이고, 두건과 얼굴 사이에 선을 긋지 않았다. 문틀이 그림 한가운데를 세로로 가르며 그 얼굴 바로 왼쪽을 지나가기 때문에, 또렷한 검은 막대와 풀린 얼굴이 한 눈에 나란히 들어온다. 가까운 것은 만질 수 있는 가장자리로, 먼 것은 빛의 얼룩으로 그린 것이다. 한 화면 안에 리글의 두 거리가 함께 있다.

1882년: 절벽은 윤곽만 남고, 속은 붓 자국이다

클로드 모네의 《디에프 근처 푸르빌의 썰물, 1882》. 화면 위 절반 이상이 옅은 파란 하늘이고, 오른쪽에 분홍과 노랑이 섞인 절벽이 바다 쪽으로 튀어나와 있으며 그 위는 초록 언덕, 발치에 작은 집들이 있다. 절벽 아래 물가에 검고 가는 세로 붓질 몇 개가 서 있고, 앞쪽 물은 파랑·보라·노랑의 짧은 가로 붓질로 덮여 있다. 오른쪽 아래에 서명이 있다.
클로드 모네, 《디에프 근처 푸르빌의 썰물, 1882》(Low Tide at Pourville, near Dieppe, 1882), 1882년, 천에 유채, 59.9 × 81.3 cm. 클리블랜드 미술관, Gift of Mrs. Henry White Cannon, 1947.196. CC0(Cleveland Museum of Art Open Access).

푸르빌은 노르망디 북쪽 해안, 디에프 근처의 어촌이다. 클리블랜드 미술관은 모네가 1882년 봄 이곳의 작은 호텔에 머물며 여러 장면을 그렸다고 설명한다. 오른쪽 아래에 "82 Claude Monet"라는 서명이 있다.

하늘이 화면의 절반을 넘게 차지하고, 수평선은 왼쪽에서 화면 가운데보다 조금 낮은 곳을 지난다. 오른쪽 절벽은 하늘을 배경으로 여전히 알아볼 수 있는 실루엣을 가진다. 그러나 그 실루엣 안쪽에는 돌의 결도, 그림자 진 틈도 따로 그려져 있지 않다. 분홍, 노랑, 연두의 짧은 세로 붓질이 나란히 서 있을 뿐이고, 그 색의 줄무늬가 햇빛을 받은 백악 절벽의 표면이 된다. 절벽 위 언덕은 같은 붓질이 가로로 누운 것이다.

절벽 아래 물가에는 검고 가는 세로 붓질 몇 개가 서 있다. 미술관은 이것을 물놀이하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한다. 사람 하나가 붓 한 번이고, 머리도 팔도 없다. 앞쪽 물은 파랑, 보라, 노랑의 짧은 가로 붓질로 덮여 있으며, 절벽이 비친 자리만 노랑과 분홍이 짙어진다. 여기서 반사는 절벽의 모양을 거꾸로 옮긴 것이 아니라, 절벽의 색이 물 위의 가로 붓질 사이로 스며든 것이다. 1864년의 꽃잎에서는 붓이 사물을 빚었다면, 여기서는 붓질이 먼저 있고 사물은 그 위에 멀리서만 떠오른다.

말년: 테두리가 테두리 노릇을 그만둔다

클로드 모네의 《수련(아가판투스)》. 가로로 아주 긴 화면에 하늘도 물가도 없이 연못 수면만 보인다. 위쪽은 보랏빛과 연한 파랑, 아래쪽은 짙은 초록이며, 연잎이 연두와 노랑의 가로 붓질 덩어리로 떠 있다. 위로 갈수록 연잎이 작고 납작해진다. 오른쪽 아래에 분홍·노랑·붉은 꽃 몇 송이와 흰 고리처럼 그린 연잎이 있다.
클로드 모네, 《수련(아가판투스)》(Water Lilies (Agapanthus)), 1915–26년경, 캔버스에 유채, 201.3 × 425.6 cm. 클리블랜드 미술관, John L. Severance Fund and an anonymous gift, 1960.81. CC0(Cleveland Museum of Art Open Access).

모네는 생애 마지막 30년 동안 지베르니에 직접 꾸민 정원을 그렸다. 클리블랜드의 이 수련은 높이 2미터, 너비 4미터가 넘는다. 미술관이 짚듯 화면에는 수평선도 연못가도 없다. 보이는 것은 수면 하나다.

위쪽은 보랏빛과 연한 파랑이 섞여 하늘이 비친 물처럼 보이고, 아래쪽은 짙은 초록이다. 아래쪽 초록에는 세로로 내리그은 붓질이 많다. 연잎은 연두와 노랑의 가로 붓질이 뭉친 덩어리다. 위로 갈수록 그 덩어리가 작고 납작해지는데, 수평선이 없는 화면에서 깊이를 알려 주는 것은 이 크기의 변화뿐이다.

오른쪽 아래를 확대해 보면 흥미로운 것이 있다. 연잎 몇 개는 흰 물감으로 그린 둥근 고리다. 테두리가 돌아온 것처럼 보이지만, 그 고리는 군데군데 끊겨 있고, 몇몇은 안쪽이 바깥 물빛과 다르지 않다. 1864년의 작약에서 테두리는 사물과 바탕을 가르는 선이었다. 여기서 고리는 무엇을 가르지 않는다. 연잎이 거기 있다는 표시일 뿐, 연잎과 물은 같은 붓질로 이어진다. 분홍과 노랑의 꽃 몇 송이가 그나마 가장 또렷한 형태인데, 그것도 물감 몇 번을 겹쳐 얹은 작은 덩어리다.

리글의 말로 하면 이 그림은 끝까지 멀리 보는 그림이다. 다만 이상한 점이 있다. 화면이 4미터가 넘으니 실제로는 가까이 다가서야 전체가 시야를 채운다. 가까이 다가가면 사물이 아니라 붓질이 보이고, 물러서면 연못이 된다. 모네는 보는 거리를 정해 주지 않고, 관객이 앞뒤로 움직이며 그 사이를 오가게 한다.

그림 앞에서 해 볼 것

네 점을 이어 보면 모네의 테두리는 한꺼번에 사라지지 않는다. 먼저 먼 것의 테두리가 풀리고(유리문 너머의 카미유), 다음에는 사물의 안쪽이 붓 자국으로 바뀌며 실루엣만 남고(푸르빌의 절벽), 마지막에는 남은 테두리마저 사물과 바탕을 가르는 일을 그만둔다(수련의 흰 고리).

다른 인상주의 그림 앞에서도 이렇게 해 보면 된다. 화면에서 가장 가까운 사물 하나와 가장 먼 사물 하나를 골라 둘의 가장자리를 견준다. 가까운 것은 선으로 끝나는지, 먼 것은 얼룩으로 끝나는지 본다. 그다음 한 걸음 다가섰다가 물러서며, 붓 자국이 사물로 바뀌는 거리를 찾아본다. 그 거리가 화가가 우리를 세워 두려 한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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