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많은 거리 그림 앞에서 맨 앞 사람부터 한 명씩 뒤로 세어 들어가 본다고 해 보자. 처음 몇 명은 모자와 외투, 두 다리와 발밑 그림자까지 있다. 조금 더 들어가면 다리가 사라지고 몸통과 머리만 남는다. 그보다 더 뒤에서는 머리 하나가 점 하나가 되고, 마지막에는 사람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색의 얼룩만 남는다. 사람이 붓 자국으로 바뀌는 그 경계선은 그림마다 다른 자리에 있다.
이 글에서는 카미유 피사로가 1874년과 1897–99년에 그린 그림 네 점에서 그 경계선을 찾는다. 네 점을 보고 나면 다른 군중 그림 앞에서도 경계선이 어디쯤 있는지 짚어 보고, 화가가 얼마나 높은 곳에서, 얼마나 멀리 보았는지 스스로 가늠할 수 있다.
피사로(1830–1903)는 카리브해의 세인트토머스섬 샬럿아말리에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에세이에 따르면 그는 1874년부터 1886년까지 열린 인상주의 전시 여덟 번에 모두 참여한 유일한 화가였고, 그룹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다. 네 점은 모두 메트가 퍼블릭 도메인으로 공개한 작품이다.
기준 하나: 루스킨의 "눈의 순수함"
영국 비평가 존 러스킨은 1857년에 낸 그림 입문서 『드로잉의 요소』 첫 편지의 각주에 이렇게 적었다. 우리 눈에 들어오는 것은 평평한 색뿐이고, 어두운 얼룩이 단단한 물체의 그늘진 쪽이라는 것, 흐린 색이 먼 곳이라는 것은 경험으로 배운다. 그러니 그림 그리는 힘은 "눈의 순수함"을 되찾는 데 달려 있다. 색의 얼룩을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채 얼룩 그대로 보는 것, 갑자기 눈을 뜬 사람이 처음 보듯 보는 것이다.
이 말을 자로 삼으면 질문이 하나 생긴다. 화가는 어디까지 "저기 사람이 있다"는 앎을 그리고, 어디서부터 눈에 보이는 얼룩만 그리는가. 피사로의 네 그림에서 그 자리를 차례로 찾아보자. 사람의 크기는 메트 사진에서 재어 캔버스 크기로 환산한 대략값이다.
모두가 사람인 공원: 《퐁투아즈의 공원》

첫 인상주의 전시가 열린 1874년의 그림이다. 메트의 설명으로는 1870년대 중반 피사로는 주로 퐁투아즈 근처의 들과 길을 그렸는데, 여기서는 드물게 마을 공원의 테라스와 그곳에 나온 잘 차려입은 부르주아와 아이들을 그렸다. 왼쪽 멀리 첨탑 너머로 파리 쪽 평야가 보이지만, 피사로는 그 전망보다 테라스를 택했다.
사람을 하나씩 보자. 회색 드레스의 여인은 어두운 옷을 입은 아이와 나란히 서 있다. 하늘색 옷을 입고 밀짚모자를 쓴 아이는 치마 자락을 뒤로 부풀리며 달려간다. 오른쪽에는 흰 모자를 쓴 아기가 탄 유모차를 미는 여인이 있고, 그 앞 땅바닥에 공 하나가 굴러 있다. 가장 큰 사람은 높이가 캔버스에서 12cm쯤이다. 얼굴에는 눈코입이 없지만, 모자와 소매, 다리와 신발은 하나하나 구분된다.
멀리 있는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생울타리 앞에 선 사람들은 작아졌을 뿐 모두 다리가 있고, 발밑에 짧은 그림자를 끈다. 화가의 눈높이는 서 있는 사람들의 머리쯤이고, 그래서 멀고 가까운 사람들의 머리가 생울타리 윗선 조금 위에 비슷하게 늘어선다. 이 그림에는 경계선이 없다. 화면 안의 사람은 끝까지 사람이다.
창문 아래의 대로: 《겨울 아침의 몽마르트르 대로》

23년 뒤의 그림이다. 메트에 따르면 1897년 초 피사로는 파리 그랑 오텔 드 뤼시에 묵으며 창밖의 대로를 그렸다. 그는 대로 끝까지 내려다보이고, 큰 나무와 큰 건물 사이로 마차와 승합마차와 사람들이 거의 새의 눈으로 보인다며 감탄했다. 2월부터 4월까지 이 자리에서 몽마르트르 대로를 열네 점, 오른쪽 이탈리앵 대로를 두 점 그렸다.
맨 아래부터 세어 보자. 오른쪽 아래에 중절모를 쓰고 긴 외투를 입은 남자가 혼자 걷는다. 높이는 8cm쯤으로, 퐁투아즈의 아이보다 훨씬 작지만 아직 두 다리와 옅은 그림자가 있다. 그 왼쪽에는 세 사람이 붙어 서 있는데, 몸이 서로 붙어 짙고 붉은 세로 붓질 몇 개로 이어진다. 화면 아래 가장자리에는 머리와 어깨만 남기고 잘린 사람도 하나 있다. 왼쪽 아래 마차에는 높은 모자를 쓴 마부와 갈색 말이 보인다.
화면 아래에서 3분의 1쯤 올라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마차는 위쪽이 밝은 작고 어두운 네모가 되고, 사람은 짙은 세로 획 하나가 된다. 그보다 더 위에서는 마차도 사람도 나무줄기도 회색 안개 속에서 같은 붓질로 섞인다. 경계선은 화면 아래 3분의 1쯤에 그어져 있다. 그 아래에서 피사로는 사람을 그렸고, 그 위에서는 러스킨이 말한 대로 얼룩을 그렸다.
시장의 군중: 《루앙의 에피스리 거리(햇빛 효과)》

이듬해 여름, 네 번째로 루앙을 찾은 피사로는 1898년 8월 19일 아들 뤼시앵에게 에피스리 거리와 금요일마다 서는 시장까지 그릴 수 있는 좋은 자리를 찾았다고 썼다. 메트에 따르면 그는 이 장면을 세 번 그렸고, 시장이 서 있는 모습은 이 그림 하나뿐이다. 위쪽에는 대성당의 탑들이 솟아 있다.
이번에는 경계선이 더 아래로 내려온다. 맨 앞줄 사람들은 높이가 6cm쯤이다. 위에서 내려다본 탓에 몸이 짧게 줄어 보이지만, 분홍빛 윗옷과 짙은 치마, 노란 밀짚모자는 하나하나 구분된다. 그런데 두세 줄만 뒤로 가면 몸통이 사라진다. 노란색, 흰색, 붉은색, 검은색의 짧은 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점 하나가 모자 하나, 머리 하나다. 거리가 좁아지는 저 끝에서는 그 점들이 양쪽 벽 사이에 끼인 한 덩어리의 얼룩이 된다.
그림의 표면도 이 차이를 거든다. 오른쪽 집 벽은 물감이 두껍게 쌓여 울퉁불퉁하고, 그 위에 붉고 푸른 간판들이 네모난 색 조각으로 붙어 있다. 군중의 점들도 그 두꺼운 물감 위에 얹혀 있어서, 가까이 들여다보면 사람보다 물감 덩어리가 먼저 보인다. 1886년 무렵 피사로는 쇠라와 시냐크의 점묘 기법을 받아들인 적이 있지만, 이 그림의 점은 크기도 방향도 제각각이어서 그때의 고른 점과는 다르다.
경계선이 화면 끝에 닿을 때: 《겨울 오후의 튀일리 정원》

1898년 12월 피사로는 튀일리 정원 맞은편 리볼리 거리 204번지에 정원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아파트를 얻었다고 썼다. 메트에 따르면 그는 이듬해 겨울과 봄에 이곳에서 루브르 쪽 풍경을 여덟 점, 이 그림처럼 생트클로틸드 성당의 첨탑이 보이는 튀일리 정원을 여섯 점 그렸다.
이 그림에서는 맨 앞 사람부터 이미 작다. 화면 아래 가장자리 가까이에 선 사람도 높이가 4cm쯤이고, 다리가 따로 보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짙은 세로 획 하나 위에 밝은 점 하나, 가끔 붉거나 흰 점 하나가 더 붙어 있을 뿐이다. 이런 획들이 둘, 셋, 넷씩 모여 연분홍 모랫길 위에 흩어져 있고, 저 멀리 나무 아래로 갈수록 획은 더 짧아져 모래 색의 작은 반점이 된다. 잔디밭은 위에서 본 도면처럼 납작한 초록 사다리꼴과 띠로 놓였다. 경계선이 화면 아래 끝까지 내려와 버린 셈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것들을 사람으로 읽는다. 러스킨의 각주를 뒤집어 보면 이유가 보인다. 그는 얼룩을 보고 사물을 알아보는 것이 경험으로 배운 일이라고 했다. 피사로는 얼룩만 그렸고, 그 얼룩을 다시 사람으로 바꾸는 일은 보는 사람의 경험이 맡는다. 모랫길의 폭, 나무의 크기, 몇 개씩 짝지어 움직이는 획의 배치가 그 일을 돕는다. 메트의 오디오 해설은 피사로의 튀일리 연작이 끝까지 광학적 객관성을 지켰다고 소개한다. 눈에 보인 만큼만 그렸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다른 군중 그림 앞에서 해 볼 일
네 점을 나란히 놓으면 방향이 보인다. 1874년 퐁투아즈에서는 사람의 머리 높이에서 보았고, 모두가 끝까지 사람이었다. 1897년 몽마르트르 대로에서는 호텔 창에서 내려다보았고, 경계선이 화면 아래 3분의 1쯤에 그어졌다. 1898년 루앙에서는 앞의 두세 줄 뒤로 사람이 점이 되었다. 1899년 튀일리에서는 경계선이 화면 아래 끝까지 내려와 거의 모든 사람이 획 하나였다. 가장 큰 사람의 높이도 12cm, 8cm, 6cm, 4cm쯤으로 줄었다.
다음에 사람 많은 거리나 광장을 그린 그림 앞에 서면, 다리가 보이는 마지막 사람을 찾아 그 발밑에 가상의 선을 그어 보자. 그 선이 화면 아래쪽에 낮게 깔려 있을수록 화가는 높은 곳에서, 먼 곳을 보았다. 그리고 그 선 위의 얼룩 하나를 골라 정말로 무엇이 그려져 있는지 들여다보자. 대개는 사람 모양이 아니라 붓 자국 하나이고, 그것을 사람으로 만든 것은 우리 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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