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앞에서 우리는 대개 한가운데부터 본다. 주인공이 거기 있으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에드가르 드가의 그림에서는 그 기대가 자주 빗나간다. 한가운데에는 꽃다발이나 빈 바닥이 놓이고, 사람은 가장자리로 밀려나 몸 일부가 잘려 있다.
이 글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퍼블릭 도메인으로 공개한 드가의 그림 네 점을 1865년부터 1877년까지 그린 순서대로 본다. 다 읽고 나면 드가의 그림 앞에서 가운데가 아니라 테두리에서 출발해, 가장자리가 무엇을 자르고 어디를 비워 두는지 따라가며 그 그림이 무엇을 보여 주기로 했는지 읽을 수 있다.
에드가르 드가(1834–1917)는 파리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세상을 떠난 프랑스 화가다. 1874년 첫 인상주의 전시회를 연 화가 모임의 창립 멤버였지만, 스스로는 ‘인상주의자’보다 ‘사실주의자’나 ‘독립파’라는 이름을 원했다.
1865년: 가운데는 꽃다발, 사람은 오른쪽 끝
가로로 긴 캔버스의 한가운데를 차지한 것은 커다란 꽃다발이다. 꽃은 달리아, 애스터, 가일라르디아다. 흰색, 연보라, 파랑, 붉은 갈색 꽃송이가 화면 위쪽 가장자리 가까이까지 부풀어 오르고, 그 아래로 붉은 천을 덮은 탁자가 화면 아랫단을 가로지른다. 캔버스를 세로로 반 접는 선을 그어 보면 그 선은 사람이 아니라 꽃다발을 지난다.

사람은 오른쪽 끝에 있다. 그림 속 여인은 드가의 학창 시절 친구 폴 발팽송의 아내로 추정된다. 그녀는 탁자에 팔꿈치를 대고 한 손을 입가에 댄 채 앉아 있는데, 몸은 오른쪽 가장자리에서 잘리고 다른 손은 오른쪽 아래 모서리에 겨우 일부만 보인다. 눈은 꽃도 우리도 아닌 오른쪽, 곧 화면 바깥을 향한다.
그래서 이 그림은 초상화이면서 꽃 정물화처럼도 보인다. 메트 오디오 가이드에서 큐레이터 키스 크리스천슨은 꽃병과 사람에게 같은 무게를 준 것을 전복적인 선택으로 본다. 1987년 X선 사진은 한 가지를 더 알려 준다. 꽃다발은 원래 오른쪽으로 더 뻗어 있었고, 드가가 그 부분을 긁어내고 그 위에 여인을 그렸다. 여인이 앉은 오른쪽 끝은 처음부터 비어 있던 자리가 아니라 꽃을 지우고 만든 자리다. 같은 오디오 가이드는 드가가 자기 그림만큼 즉흥적이지 않은 예술은 없다고 말했다는 일화도 소개한다.
이 그림에서 가장자리가 자른 것은 꽃이 아니라 사람이다. 그리고 그 사람의 시선이 다시 가장자리 밖으로 나간다. 테두리가 그림을 닫지 않고 바깥으로 열어 둔다.
1871년: 무대 아래의 어두운 머리들
여섯 해 뒤의 이 그림은 세로로 긴 캔버스다. 장면은 자코모 마이어베어의 오페라 《악마 로베르》 3막, 달빛 비치는 수도원 폐허에서 무덤을 나온 수녀들의 혼령이 춤추는 대목이다.

그런데 제목이 가리키는 발레는 화면 위쪽 절반에 들어 있다. 어두운 아치 사이로 희미한 빛이 비치고, 흰 옷의 수녀들은 붓질 몇 번으로 번져 형체가 또렷하지 않다. 무대 앞 가장자리의 밝은 선 아래로는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의 머리가 한 줄로 늘어서 있다. 그 아래 화면의 4분의 1가량은 난간인지 의자인지 모를 형체만 희미한 어둠이다. 오른쪽 끝의 남자는 가장자리에 몸이 걸려 잘린다.
앞줄 악사들 사이에는 드가의 친구인 바순 연주자 데지레 디오가 있다. 가운데 수염 난 남자의 바로 왼쪽 위에서는 한 사람이 어두운 오페라글라스를 들어 올리고 있다. 메트는 이 남자가 무대 위의 일에는 관심이 없고 오페라글라스를 객석 쪽으로 향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1987년 X선 사진은 오페라글라스를 든 이 인물이 원래 다른 악사가 있던 자리에 덧그려졌고, 오른쪽 회랑 안쪽에 있던 수녀 한 명이 지워졌음을 보여 준다. 드가는 무대 위 인물을 하나 덜고, 악사 한 명이 있던 자리에 무대를 보지 않는 사람을 넣었다.
그 결과 화면 아래 절반은 주제가 아닌 사람들의 뒤통수와 어둠이다. 우리는 무대를 정면이 아니라 앞사람들 머리 너머로 보는 자리에 놓이고, 무대는 화면 위쪽으로 밀려 올라간다.
1874년: 방의 한가운데, 화면의 오른쪽
《무용 수업》은 거의 정사각형인 캔버스다. 바리톤 가수이자 수집가인 장바티스트 포르가 주문했고, 드가는 1874년 11월에 그림을 넘겼다. 가운데의 분홍 띠를 맨 무용수가 한쪽 팔을 높이 들고 동작을 해 보이고, 긴 지팡이를 짚은 발레 교사 쥘 페로(1810–1892)가 그녀를 지켜본다.

메트의 해설은 페로가 캔버스로 보면 오른쪽에 서 있지만 방으로 보면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설명한다. 이 차이를 만드는 것이 바닥이다. 판자 이음매는 화면 아래 가장자리와 거의 나란히 겹겹이 올라가고, 왼쪽 벽과 천장 몰딩은 왼쪽 앞에서 오른쪽 안쪽으로 비스듬히 물러난다. 바닥을 위쪽으로 기울여 보여 주는 원근법이다. 이렇게 들린 바닥 때문에, 앞쪽 무용수와 페로 사이 화면 오른쪽 아래에는 사람 없는 판자 바닥이 넓게 비어 있다.
가장자리도 그냥 두지 않았다. 왼쪽 아래에는 바닥에 놓인 더블베이스가 왼쪽 가장자리에 비스듬히 걸려 몸통 대부분이 잘려 나갔고, 오른쪽 끝의 무용수는 세로로 잘려 3분의 1쯤만 남았다. 피아노 반주자는 화면 밖으로 잘려 나갔고, 보면대 위 악보는 일부러 읽히지 않게 그려졌다. 메트 해설은 크게 잘린 악기와 무용수가 일본 우키요에 목판화에서 얻은 구성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X선 조사에서는 거울의 크기, 가운데 무용수의 위치, 왼쪽 앞 무용수의 머리와 발 위치가 바뀌었음이 확인됐다. 그 자리에서 받은 인상을 옮긴 그림이 아니라 공들여 짠 구성이라는 뜻이다. 이 그림은 1876년 두 번째 인상주의 전시회에 ‘무용 시험(Examen de danse)’이라는 제목으로 걸렸다.
1877년: 비워 둔 바닥
세 해 뒤의 이 그림에서는 사람이 더 멀리 밀려난다. 두 무용수는 화면 오른쪽 위에서 벽에 붙은 바를 잡고 한 다리씩 바에 올려 몸을 뻗는다. 오른쪽 무용수의 발끝은 오른쪽 가장자리에 닿기 직전에서 멈춘다. 화면의 아래 절반은 회색 바닥이고, 그 위에는 거의 아무것도 없다.

벽 아래 걸레받이와 바닥 판자의 이음매는 모두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비스듬히 올라간다. 우리는 바닥을 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셈이다. 화면 정중앙 가까이에 있는 것은 왼쪽 무용수의 발끝 하나와 그 옆의 빈 바닥뿐이다.
왼쪽 벽 아래에는 물뿌리개가 하나 있다. 무용수들이 춤출 때 먼지가 일지 않도록 연습실 바닥에 물을 뿌리던 물건이다. 메트는 드가가 이것을 일종의 시각적 말장난으로 써서 오른쪽 무용수의 모양이 물뿌리개를 닮게 했다고 본다. 빈 바닥을 사이에 두고 주둥이를 뻗은 물뿌리개와 다리를 뻗은 무용수가 짝을 이룬다. 이 그림은 1877년 인상주의 전시회에 나왔다.
1876년, 뒤랑티가 글로 옮긴 것
프랑스 문화부의 정리에 따르면 1876년 4월, 인상주의자들은 파리 르 펠르티에 거리 11번지 뒤랑뤼엘 화랑의 방 세 개를 빌려 두 번째 전시회를 열었다. 같은 해 문필가이자 비평가 에드몽 뒤랑티는 『새로운 회화: 뒤랑뤼엘 화랑에서 전시하는 화가 무리에 관하여』라는 38쪽짜리 소책자를 냈다.
그 29쪽에 이런 문장이 있다. 인물은 “결코 화면의 한가운데에 있지 않다(il n’est jamais au centre de la toile)”. 뒤랑티는 이어서, 인물이 늘 온전히 보이지는 않고 때로는 다리 중간이나 몸 중간에서, 때로는 세로로 잘린 채 나타난다고 쓴다. 바로 앞, 28쪽에서 29쪽 첫머리에 걸친 대목에서는 그 근거를 우리 눈에서 찾는다. 우리의 시점은 늘 방 한가운데에 있지 않고, 앞쪽에 넓게 펼쳐진 땅이나 마룻바닥을 마음대로 지울 수도 없으며, 때로는 아주 높고 때로는 아주 낮다. 우리 눈이 보는 범위는 틀에 갇힌 것처럼 끝이 있어서 옆쪽에 있는 것들은 그 틀의 가장자리에 걸린 채로만 보이고, 집 안에서는 창틀이 바깥 풍경을 늘 뜻밖의 방식으로 잘라 보여 준다는 것이다.
뒤랑티는 이 대목에서 어느 화가의 이름도 대지 않는다. 그래도 그의 문장을 네 그림 옆에 놓으면 맞아떨어지는 곳이 분명하다. 1865년의 여인은 한쪽으로 몰린 채 가장자리에서 잘리고, 1874년의 무용수는 세로로 잘렸으며, 1877년의 바닥은 높은 시점에서 넓게 펼쳐진다. 다만 1877년 그림을 뺀 세 점은 이 글보다 먼저 그려졌고, 1874년 그림은 바로 그 1876년 전시회에 걸려 있었다. 뒤랑티의 문장은 드가가 따른 규칙이라기보다 이미 그렇게 그려진 그림을 같은 시대 사람이 말로 옮긴 것에 가깝다. 메트의 드가 에세이는 그가 일본 판화에서 자르기와 비대칭을 가져왔고, 16세기 이탈리아 매너리즘 화가들이 인물 일부를 잘라 내는 방식도 보았다고 설명한다.
가장자리에서 시작하는 법
네 그림에서 가장자리는 그림이 끝나는 선에 그치지 않았다. X선 사진이 보여 주듯 드가는 그리는 도중에도 인물을 지우고 옮기고 덧그리며 이 배치를 고쳤다.
그러니 드가의 그림 앞에서는 순서를 바꿔 보자. 가운데부터 보지 말고 네 변을 한 바퀴 돌며 두 가지를 찾는다. 가장자리가 자른 것 하나, 그리고 비워 둔 곳 하나. 그 둘을 찾으면 주인공이 왜 그 자리에 있는지가 보인다. 드가의 그림에서 무엇을 볼지는 가장자리가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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