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코프 판 라위스달의 이 그림들에서 들판은 고르게 밝지 않다. 앞쪽 땅은 어둡고, 그 너머 한 조각이 환하고, 다시 어두워졌다가 어딘가에서 또 밝아진다. 해가 났다면 온 들판이 밝아야 할 것 같은데, 왜 군데군데만 밝을까.
클리블랜드 미술관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공개한 그림 네 점은 1646년부터 1670년경까지 이어지며, 그 밝은 조각이 어디에 놓였는지 보여 준다. 다 읽고 나면 라위스달의 풍경을 앞에서 뒤로 훑으며 어둠과 밝음의 띠를 세고, 밝은 곳에 무엇이 서 있는지 짚어 낼 수 있다.
글에 나오는 밝기 숫자는 공개된 사진 파일에서 몇몇 구역을 눈으로 잡아 평균 밝기를 잰 값이다. 0이 검정, 255가 흰색이다. 사진의 조명에 따라 달라지므로 물감의 실제 값이 아니고, 같은 그림 안에서 비교할 때만 뜻이 있다.
야코프 판 라위스달(1628/29–1682)은 네덜란드 하를럼에서 태어나 암스테르담에서 세상을 떠났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따르면 풍경화가였던 숙부 살로몬 판 라위스달에게 배웠을 가능성이 크고, 1657년에는 이미 암스테르담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1646년: 멀리 있는 밝은 띠 하나
라위스달이 작품에 남긴 가장 이른 연도는 1646년이고, 이때 그는 열여덟 살쯤이었다. 《풍차가 있는 풍경》에서 지평선은 화면 위에서 약 71% 지점에 있어, 위쪽 대부분이 하늘이다. 오른쪽의 풍차와 나무는 어두운 덩어리로 서 있다.

땅에서 밝은 곳은 한 군데다. 왼쪽 멀리 집들 앞의 풀밭이 92에서 117쯤인데, 가까운 땅은 31에서 37쯤이다. 세 배 안팎의 차이가 앞뒤로 갈린다. 두 사람은 그 밝은 풀밭 앞을 어두운 형체로 지나간다. 클리블랜드 미술관은 이 풀밭을 눈여겨보라고 한다. 흰 리넨을 햇볕에 바래는 곳이고, 그 일에는 몇 달이 걸렸다는 것이다. 사진을 확대하면 풀밭 위에 흰 띠가 보인다. 이 밝은 조각은 그냥 빛이 아니라 해가 일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1660년대: 떨어져 있는 두 조각
스무 해쯤 지난 《곡물밭》은 크기가 47 × 57.2 cm인 작은 캔버스다. 지평선은 약 69% 지점으로 거의 그대로인데, 하늘은 큰 먹구름으로 덮이고 위쪽에 파란 틈이 열려 있다. 메트의 해설은 이 구름이 바람을 타고 앞으로 빠르게 밀려온다고 읽는다.

이제 밝은 조각이 둘이 되고, 서로 떨어져 있다. 오른쪽 곡물밭이 109, 그 아래 모래 둑이 123쯤이다. 둘 사이의 덤불은 57, 왼쪽 땅은 41까지 내려간다. 눈은 어두운 덤불을 건너뛰어 앞의 둑에서 뒤의 밭으로 옮겨 간다. 자루를 메고 개를 데려가는 남자는 더 어두운 왼쪽 길 위, 어두운 덤불 앞에 있어서, 앞의 그림에서 걷던 두 사람과 달리 밝은 곳의 앞을 지나가지 않는다.
이 구름이 위협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메트의 해설은 당시 사람들이라면 풍차, 곡물밭, 비구름이 모두 사람에게 이롭다는 것을 바로 알아봤을 것이라고 본다. 밝은 밭과 먹구름은 대립하는 장면이 아니라 한 농사의 두 부분이다.
1670년경: 앞에서 뒤로 세는 띠
《밀밭》은 100 × 130.2 cm의 큰 캔버스다. 메트는 라위스달의 곡물밭 그림으로 알려진 스물일곱 점 가운데 가장 당당한 작품으로 흔히 꼽힌다고 전하고, 크기와 구성으로 보아 벽난로 위에 걸린 그림이었을 수 있다고 추측한다. 지평선은 약 71% 지점이다.

여기서는 밝기가 띠처럼 쌓인다. 앞쪽 땅이 52, 왼쪽 밀밭이 102, 그 너머의 어두운 땅이 43, 그 뒤의 언덕이 56쯤이고, 왼쪽 끝에는 배 몇 척이 뜬 바다가 있다. 앞에서 뒤로 어둠, 밝음, 어둠이 번갈아 오면서 거리를 잰다. 같은 밀밭인데 오른쪽은 144로 왼쪽보다 훨씬 밝다. 길에서 여자와 아이가 선 곳도 141쯤으로 오른쪽 밭과 비슷하다.
메트 오디오 가이드에서 촬영 감독 개빈 피니는 구름 틈으로 든 빛이 여자와 아이를 비추고 있고, 그들이 구름 그림자의 가장자리에 있어서 다음 순간 어둠에 들 것 같다고 말한다. 큐레이터 애덤 이커는 평범한 네덜란드 풍경을 하늘의 빛으로 극적인 것으로 바꾼다고 설명한다. 그림 속의 사람은 작지만, 밝은 조각이 사람을 고른 것처럼 보이는 까닭이 여기 있다.
곡물밭이 없을 때
같은 무렵의 《급류 옆 교회가 있는 풍경》에는 곡물밭이 없고, 통나무 왼쪽으로 작은 풀밭이 보일 뿐이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따르면 라위스달은 1650년대 후반부터 알라르트 판 에버르딩언의 작품에 바탕을 둔 폭포 그림을 그렸다. 이 그림에서는 밝은 조각이 다른 곳에 놓인다.

언덕에서 빛을 받는 곳은 교회의 벽이다. 벽이 95쯤인데 바로 아래 언덕은 57, 왼쪽 나무는 35, 폭포의 검은 물은 20쯤이다. 앞쪽의 흰 거품도 잰 구역에서 79쯤으로 밝지만 이것은 부서지는 물이다. 여기서는 밀밭이 하던 일을 건물이 맡는다. 클리블랜드 미술관의 짧은 해설은 급류와 잘린 통나무에서 삶의 덧없음을 읽을 뿐 빛은 다루지 않으니, 이것은 한 점을 보고 하는 말이다. 적어도 이 그림에서 밝은 조각은 들판에 매여 있지 않다.
판 호이언의 1646년 그림과 비교하면
이 그림들을 시대 속에 놓으려면 ‘톤의 단계’라는 말이 도움이 된다. 메트의 네덜란드 풍경화 에세이는 1620년대 말부터 1640년대까지 이어진 하를럼 풍경화의 이 흐름에서 얀 판 호이언과 살로몬 판 라위스달을 주요 화가로 꼽는다. 판 호이언의 《하를럼과 하를럼 호수 풍경》은 라위스달의 첫 연도와 같은 1646년 작이다.
그 그림에도 커다란 구름이 있고, 낮은 땅과 물에는 밝은 띠가 있다. 그러니 구름과 밝은 조각은 라위스달이 처음 만든 것이 아니다. 메트의 작은 사진 파일(가로 600픽셀)에서 같은 방식으로 재 보면 밝은 물줄기가 129쯤, 어두운 땅이 44쯤으로 세 배 가까이 벌어진다. 다만 이 밝은 곳은 물이고, 땅에서 가장 밝은 곳은 79에서 88쯤이다. 이 숫자는 한 그림 안에서만 뜻이 있으니 두 화가를 가르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눈에 더 잘 보이는 차이는 크기와 색이다. 판 호이언의 밝은 띠는 대부분 먼 곳의 가는 줄이고 화면은 대체로 회색과 갈색, 옅은 녹색 안에 머문다. 《밀밭》의 밝은 조각은 화면 아래쪽을 넓게 차지하는 옅은 노란 들판이고, 그 위에 파란 하늘이 있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는 라위스달을 네덜란드 풍경화의 ‘고전 단계’를 대표하는 화가로 부르는데, 이 그림에서는 그 변화를 들판의 크기와 색으로 볼 수 있다.
구름이 정말 그렇게 났을까
피니의 말처럼 《밀밭》은 한순간을 붙잡은 듯 보인다. 하지만 메트의 《곡물밭》 해설은 라위스달의 작업이 자연에서 그린 소묘를 바탕으로 화실에서 이루어졌고, 그럴듯함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솜씨 있게 짜였다고 설명한다. 그날 하늘이 실제로 어땠는지는 알 수 없다. 구름 틈은 밝은 조각이 거기 있어도 되는 이유를 주고, 그 자리를 고른 것은 화가다.
그러니 라위스달의 풍경 앞에서는 해가 어디 있는지 찾느라 시간을 쓰지 않아도 된다. 대신 맨 앞의 땅에서 지평선까지 올라가며 어둠과 밝음이 몇 번 바뀌는지 세어 보고, 가장 밝은 조각에 무엇이 있는지 본다. 리넨일 수도, 밀일 수도, 교회 벽일 수도, 아이의 손을 잡은 여자일 수도 있다. 거기가 그 그림이 보여 주기로 한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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