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BOX

'26/11/05 UPDATE

ART / FIELD NOTES

라위스달의 들판은 왜 군데군데만 밝을까

1646년부터 1670년경까지 야코프 판 라위스달의 그림 네 점에서 밝은 조각이 어디에 놓였는지 재 보고, 앞에서 뒤로 어둠과 밝음의 띠를 세는 법을 정리한다.

야코프 판 라위스달의 이 그림들에서 들판은 고르게 밝지 않다. 앞쪽 땅은 어둡고, 그 너머 한 조각이 환하고, 다시 어두워졌다가 어딘가에서 또 밝아진다. 해가 났다면 온 들판이 밝아야 할 것 같은데, 왜 군데군데만 밝을까.

클리블랜드 미술관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공개한 그림 네 점은 1646년부터 1670년경까지 이어지며, 그 밝은 조각이 어디에 놓였는지 보여 준다. 다 읽고 나면 라위스달의 풍경을 앞에서 뒤로 훑으며 어둠과 밝음의 띠를 세고, 밝은 곳에 무엇이 서 있는지 짚어 낼 수 있다.

글에 나오는 밝기 숫자는 공개된 사진 파일에서 몇몇 구역을 눈으로 잡아 평균 밝기를 잰 값이다. 0이 검정, 255가 흰색이다. 사진의 조명에 따라 달라지므로 물감의 실제 값이 아니고, 같은 그림 안에서 비교할 때만 뜻이 있다.

야코프 판 라위스달(1628/29–1682)은 네덜란드 하를럼에서 태어나 암스테르담에서 세상을 떠났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따르면 풍경화가였던 숙부 살로몬 판 라위스달에게 배웠을 가능성이 크고, 1657년에는 이미 암스테르담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1646년: 멀리 있는 밝은 띠 하나

라위스달이 작품에 남긴 가장 이른 연도는 1646년이고, 이때 그는 열여덟 살쯤이었다. 《풍차가 있는 풍경》에서 지평선은 화면 위에서 약 71% 지점에 있어, 위쪽 대부분이 하늘이다. 오른쪽의 풍차와 나무는 어두운 덩어리로 서 있다.

야코프 판 라위스달의 《풍차가 있는 풍경》. 가로로 긴 화면의 위쪽 대부분을 회색 구름이 낀 저녁빛 하늘이 차지한다. 오른쪽에는 어두운 나무와 울타리 뒤로 풍차가 서 있다. 왼쪽 멀리 집들 앞의 풀밭만 환하고, 그 앞 길로 두 사람이 어둡게 지나간다. 앞쪽 땅은 어두운 갈색이고 아래쪽에 작은 물웅덩이가 있다.
야코프 판 라위스달, 《풍차가 있는 풍경》(Landscape with a Windmill), 1646년, 나무판에 유채, 액자 제외 49.5 × 68.5 cm. 클리블랜드 미술관, Mr. and Mrs. William H. Marlatt Fund, 1967.19. CC0(Cleveland Museum of Art Open Access). 클리블랜드 미술관 작품 기록

땅에서 밝은 곳은 한 군데다. 왼쪽 멀리 집들 앞의 풀밭이 92에서 117쯤인데, 가까운 땅은 31에서 37쯤이다. 세 배 안팎의 차이가 앞뒤로 갈린다. 두 사람은 그 밝은 풀밭 앞을 어두운 형체로 지나간다. 클리블랜드 미술관은 이 풀밭을 눈여겨보라고 한다. 흰 리넨을 햇볕에 바래는 곳이고, 그 일에는 몇 달이 걸렸다는 것이다. 사진을 확대하면 풀밭 위에 흰 띠가 보인다. 이 밝은 조각은 그냥 빛이 아니라 해가 일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1660년대: 떨어져 있는 두 조각

스무 해쯤 지난 《곡물밭》은 크기가 47 × 57.2 cm인 작은 캔버스다. 지평선은 약 69% 지점으로 거의 그대로인데, 하늘은 큰 먹구름으로 덮이고 위쪽에 파란 틈이 열려 있다. 메트의 해설은 이 구름이 바람을 타고 앞으로 빠르게 밀려온다고 읽는다.

야코프 판 라위스달의 《곡물밭》. 큰 회색 먹구름이 하늘을 덮고 위쪽에 파란 틈이 있다. 땅은 군데군데만 밝다. 오른쪽 가운데에 옅은 곡물밭이, 아래에 밝은 모래 둑이 있고 그 사이는 어두운 덤불이다. 왼쪽 길에는 자루를 멘 남자와 개가 어두운 덤불 앞을 걷는다. 왼쪽 나무 위로 풍차가 솟아 있고, 가운데에 어린 나무 두 그루가 있다.
야코프 판 라위스달, 《곡물밭》(Grainfields), 1660년대 중반 또는 후반, 캔버스에 유채, 47 × 57.2 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The Friedsam Collection, Bequest of Michael Friedsam, 1931, 32.100.14. 퍼블릭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메트 작품 기록

이제 밝은 조각이 둘이 되고, 서로 떨어져 있다. 오른쪽 곡물밭이 109, 그 아래 모래 둑이 123쯤이다. 둘 사이의 덤불은 57, 왼쪽 땅은 41까지 내려간다. 눈은 어두운 덤불을 건너뛰어 앞의 둑에서 뒤의 밭으로 옮겨 간다. 자루를 메고 개를 데려가는 남자는 더 어두운 왼쪽 길 위, 어두운 덤불 앞에 있어서, 앞의 그림에서 걷던 두 사람과 달리 밝은 곳의 앞을 지나가지 않는다.

이 구름이 위협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메트의 해설은 당시 사람들이라면 풍차, 곡물밭, 비구름이 모두 사람에게 이롭다는 것을 바로 알아봤을 것이라고 본다. 밝은 밭과 먹구름은 대립하는 장면이 아니라 한 농사의 두 부분이다.

1670년경: 앞에서 뒤로 세는 띠

《밀밭》은 100 × 130.2 cm의 큰 캔버스다. 메트는 라위스달의 곡물밭 그림으로 알려진 스물일곱 점 가운데 가장 당당한 작품으로 흔히 꼽힌다고 전하고, 크기와 구성으로 보아 벽난로 위에 걸린 그림이었을 수 있다고 추측한다. 지평선은 약 71% 지점이다.

야코프 판 라위스달의 《밀밭》. 파란 하늘에 희고 회색인 뭉게구름이 높이 쌓여 화면의 위쪽 대부분을 차지한다. 아래에서는 모래길이 가운데로 물러나고, 양쪽으로 밝은 밀밭이 펼쳐진다. 길의 밝은 곳에 여자와 아이가 서 있고, 오른쪽 길에는 남자가 걸어온다. 앞쪽 땅과 왼쪽 밀밭 너머는 어둡고, 왼쪽 끝 멀리 배 몇 척이 뜬 바다가 보인다.
야코프 판 라위스달, 《밀밭》(Wheat Fields), 1670년경, 캔버스에 유채, 100 × 130.2 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Bequest of Benjamin Altman, 1913, 14.40.623. 퍼블릭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메트 작품 기록

여기서는 밝기가 띠처럼 쌓인다. 앞쪽 땅이 52, 왼쪽 밀밭이 102, 그 너머의 어두운 땅이 43, 그 뒤의 언덕이 56쯤이고, 왼쪽 끝에는 배 몇 척이 뜬 바다가 있다. 앞에서 뒤로 어둠, 밝음, 어둠이 번갈아 오면서 거리를 잰다. 같은 밀밭인데 오른쪽은 144로 왼쪽보다 훨씬 밝다. 길에서 여자와 아이가 선 곳도 141쯤으로 오른쪽 밭과 비슷하다.

메트 오디오 가이드에서 촬영 감독 개빈 피니는 구름 틈으로 든 빛이 여자와 아이를 비추고 있고, 그들이 구름 그림자의 가장자리에 있어서 다음 순간 어둠에 들 것 같다고 말한다. 큐레이터 애덤 이커는 평범한 네덜란드 풍경을 하늘의 빛으로 극적인 것으로 바꾼다고 설명한다. 그림 속의 사람은 작지만, 밝은 조각이 사람을 고른 것처럼 보이는 까닭이 여기 있다.

곡물밭이 없을 때

같은 무렵의 《급류 옆 교회가 있는 풍경》에는 곡물밭이 없고, 통나무 왼쪽으로 작은 풀밭이 보일 뿐이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따르면 라위스달은 1650년대 후반부터 알라르트 판 에버르딩언의 작품에 바탕을 둔 폭포 그림을 그렸다. 이 그림에서는 밝은 조각이 다른 곳에 놓인다.

야코프 판 라위스달의 《급류 옆 교회가 있는 풍경》. 세로로 긴 화면 위쪽에 흰빛과 회색의 구름이 쌓이고, 오른쪽 언덕 위에 뾰족한 탑이 달린 큰 교회 건물이 환하게 서 있다. 왼쪽에는 어두운 나무가 있다. 아래쪽에서는 갈색 바위 사이로 물이 검게 떨어지다가 흰 거품으로 부서진다. 곡물밭은 없다.
야코프 판 라위스달, 《급류 옆 교회가 있는 풍경》(Landscape with a Church by a Torrent), 1670년경, 캔버스에 유채, 액자 제외 71 × 55.2 cm. 클리블랜드 미술관, Bequest of Jane Taft Ingalls, 1962.256. CC0(Cleveland Museum of Art Open Access). 클리블랜드 미술관 작품 기록

언덕에서 빛을 받는 곳은 교회의 벽이다. 벽이 95쯤인데 바로 아래 언덕은 57, 왼쪽 나무는 35, 폭포의 검은 물은 20쯤이다. 앞쪽의 흰 거품도 잰 구역에서 79쯤으로 밝지만 이것은 부서지는 물이다. 여기서는 밀밭이 하던 일을 건물이 맡는다. 클리블랜드 미술관의 짧은 해설은 급류와 잘린 통나무에서 삶의 덧없음을 읽을 뿐 빛은 다루지 않으니, 이것은 한 점을 보고 하는 말이다. 적어도 이 그림에서 밝은 조각은 들판에 매여 있지 않다.

판 호이언의 1646년 그림과 비교하면

이 그림들을 시대 속에 놓으려면 ‘톤의 단계’라는 말이 도움이 된다. 메트의 네덜란드 풍경화 에세이는 1620년대 말부터 1640년대까지 이어진 하를럼 풍경화의 이 흐름에서 얀 판 호이언과 살로몬 판 라위스달을 주요 화가로 꼽는다. 판 호이언의 《하를럼과 하를럼 호수 풍경》은 라위스달의 첫 연도와 같은 1646년 작이다.

그 그림에도 커다란 구름이 있고, 낮은 땅과 물에는 밝은 띠가 있다. 그러니 구름과 밝은 조각은 라위스달이 처음 만든 것이 아니다. 메트의 작은 사진 파일(가로 600픽셀)에서 같은 방식으로 재 보면 밝은 물줄기가 129쯤, 어두운 땅이 44쯤으로 세 배 가까이 벌어진다. 다만 이 밝은 곳은 물이고, 땅에서 가장 밝은 곳은 79에서 88쯤이다. 이 숫자는 한 그림 안에서만 뜻이 있으니 두 화가를 가르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눈에 더 잘 보이는 차이는 크기와 색이다. 판 호이언의 밝은 띠는 대부분 먼 곳의 가는 줄이고 화면은 대체로 회색과 갈색, 옅은 녹색 안에 머문다. 《밀밭》의 밝은 조각은 화면 아래쪽을 넓게 차지하는 옅은 노란 들판이고, 그 위에 파란 하늘이 있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는 라위스달을 네덜란드 풍경화의 ‘고전 단계’를 대표하는 화가로 부르는데, 이 그림에서는 그 변화를 들판의 크기와 색으로 볼 수 있다.

구름이 정말 그렇게 났을까

피니의 말처럼 《밀밭》은 한순간을 붙잡은 듯 보인다. 하지만 메트의 《곡물밭》 해설은 라위스달의 작업이 자연에서 그린 소묘를 바탕으로 화실에서 이루어졌고, 그럴듯함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솜씨 있게 짜였다고 설명한다. 그날 하늘이 실제로 어땠는지는 알 수 없다. 구름 틈은 밝은 조각이 거기 있어도 되는 이유를 주고, 그 자리를 고른 것은 화가다.

그러니 라위스달의 풍경 앞에서는 해가 어디 있는지 찾느라 시간을 쓰지 않아도 된다. 대신 맨 앞의 땅에서 지평선까지 올라가며 어둠과 밝음이 몇 번 바뀌는지 세어 보고, 가장 밝은 조각에 무엇이 있는지 본다. 리넨일 수도, 밀일 수도, 교회 벽일 수도, 아이의 손을 잡은 여자일 수도 있다. 거기가 그 그림이 보여 주기로 한 자리다.

끝 · END OF NOTE
RSS 구독목록으로
COMMENTS BOX

이 기록에 대화를 더해 주세요.

궁금한 점, 다른 접근, 직접 해 본 결과를 나눠 주세요.

최신순

로그인 상태 확인 중…

댓글을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