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화 속 나무 한 그루를 골라 손가락으로 그 윤곽을 따라가 본다고 해 보자. 어떤 그림에서는 손가락이 하늘과 잎 사이의 경계를 끝까지 따라간다. 어떤 그림에서는 몇 센티미터 가지 못하고 멈춘다. 잎이 어디서 끝나고 하늘이 어디서 시작하는지 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카미유 코로(1796–1875)가 약 50년 사이에 그린 그림 네 점을 이 질문 하나로 본다. 잎이 어디서 끝나는가. 네 점을 차례로 보고 나면, 다른 풍경화 앞에서도 윤곽이 형태를 나누는 선인지, 형태들을 한 덩어리로 묶는 흐릿한 가장자리인지 스스로 가려 볼 수 있다.
코로는 파리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그를 19세기 프랑스에서 아마 가장 영향력이 컸던 풍경화가로 소개한다. 네 점은 모두 메트가 퍼블릭 도메인으로 공개한 작품이다.
능선은 선으로 끝난다: 《알바노 호수와 카스텔 간돌포》

첫 그림은 가로 39cm 남짓한 종이에 그린 유화다. 메트의 설명에 따르면 코로가 세 차례 이탈리아에 머문 가운데 첫 번째 체류 때 그렸다. 로마에서 남동쪽으로 떨어진 알바노 호수 위 언덕에 교황의 여름 거처인 카스텔 간돌포가 있고, 그림 위쪽 가운데의 궁과 작은 돔이 그곳이다.
먼저 언덕의 능선을 따라가 보자. 옅은 노랑과 하늘색이 섞인 하늘과 어두운 초록 언덕이 만나는 선은 화면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한 번도 끊기지 않는다. 능선 위의 건물들은 분홍과 황토색의 네모난 덩어리로 칠해졌고, 해를 받은 면과 그늘진 면이 각진 경계로 나뉜다. 호숫가도 마찬가지다. 푸른 회색 물과 초록 비탈 사이의 곡선이 분명하고, 앞쪽 덤불들은 하나하나 둥근 덩어리로 떨어져 있다.
하늘을 가까이 보면 붓이 짧게 휘돌아 간 자국이 결처럼 남아 있다. 붓질은 빠르지만, 무엇이 무엇과 맞닿는지는 전혀 모호하지 않다. 메트의 바르비종파 에세이는 이 무렵 로마 근교에서 그린 야외 스케치들이 신고전주의의 형식적인 선적 성격을 간직했다고 설명한다. 이 그림에서는 그 말이 눈으로 확인된다.
잎은 점으로, 나무는 덩어리로: 《퐁텐블로: 바브레오의 참나무》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뒤, 코로는 1832년이나 1833년 여름 파리 근교 퐁텐블로 숲의 바브레오에서 이 습작을 그렸다. 메트에 따르면 바브레오는 거대한 참나무로 이름난 구역이었고, 코로는 이탈리아에서 익힌 자연주의 방식으로 그렸다. 이 나무는 1835년 살롱에 낸 큰 그림 《광야의 하갈》에 다시 등장한다. 성경 장면의 배경인 사막으로 프랑스 북부의 참나무를 옮겨 심은 셈이다.
이번에는 가장 큰 참나무의 꼭대기를 따라가 보자. 짙은 초록 덩어리가 강한 파랑 하늘에 부딪히는 윤곽은 울퉁불퉁하지만 끊기지 않는다. 손가락은 여전히 끝까지 갈 수 있다. 달라진 것은 그 안쪽이다. 잎은 한 장 한 장 그려지지 않았다. 짙은 초록, 푸른 초록, 노란 초록의 작고 둥근 붓 자국이 겹쳐 쌓이고, 그 붓 자국 무리가 모여 나무의 부피를 만든다. 가까이 보면 표면에 잔금이 그물처럼 퍼져 있는데, 오래된 유화 표면에 생기는 균열이다.
어두운 잎 덩어리 사이를 왼쪽 위로 비스듬히 가로지르는 가지 몇 개는 밝은 회백색이다. 아래의 줄기들도 회백색 세로 붓질로 서 있다. 땅은 황토, 분홍, 회색이 섞인 넓은 붓질이고, 돌들은 밝은 윗면과 어두운 옆면이 딱 잘린 경계로 나뉜다. 메트 에세이는 이 그림을 코로의 초기작 가운데 가장 힘차고 정확한 작품의 하나로 꼽고, 초점이 날카롭게 맞은 지형이라고 쓴다.
뵐플린의 한 쌍: 선으로 보기와 덩어리로 보기
여기서 미술사학자 하인리히 뵐플린의 개념 하나를 빌려 오면 두 그림의 차이와 다음 두 그림의 변화를 한 줄로 말할 수 있다. 뵐플린은 1915년 『미술사의 기초 개념』에서 양식의 차이를 다섯 쌍의 개념으로 정리했고, 그 첫 쌍이 선적인 것과 회화적인 것이다. 그는 "선적인 양식은 선으로 보고, 회화적인 양식은 덩어리로 본다"고 요약한다.
그의 설명을 조금 더 풀면 이렇다. 선으로 볼 때 눈은 가장자리를 따라 이끌리고, 형태와 형태 사이가 분명하게 갈린다. 덩어리로 볼 때는 주의가 가장자리에서 물러나고, 사물은 밝고 어두운 얼룩으로 먼저 다가온다. 윤곽이 경계로서 힘을 잃는 순간, 화면 곳곳이 하나로 이어지며 흔들리기 시작한다.
한 가지는 짚어 두어야 한다. 뵐플린은 이 쌍을 16세기와 17세기 미술의 차이, 예컨대 뒤러와 렘브란트의 차이를 설명하려고 만들었다. 한 화가의 생애에 이 쌍을 대는 것은 그의 역사 주장을 옮겨 오는 일이 아니라, 무엇을 볼지 알려 주는 도구만 빌리는 일이다. 그 도구로 보면 앞의 두 그림은 모두 선 쪽에 있다. 잎이 점으로 풀렸어도 나무의 바깥 윤곽은 아직 경계선이다.
잎이 하늘로 흩어진다: 《빌다브레》

40년 가까이 지난 1870년의 그림이다. 코로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빌다브레의 땅에 있는 큰 연못을 여러 번 그렸다. 메트의 설명에 따르면 같은 장면을 되풀이하며 특히 가운데 왼쪽의 나무를 자유롭게 바꾸었다.
바로 그 나무에서 손가락으로 윤곽을 따라가 보자. 이번에는 첫 걸음부터 막힌다. 잎은 은회색 하늘 위에 흩뿌린 어두운 회록색 점이다. 점들은 줄기 가까이에서 촘촘하고 바깥으로 갈수록 드문드문해지다가, 어디쯤에서 끝나는지 정할 수 없게 하늘에 섞인다. 뵐플린의 말로 하면 가장자리가 경계로서의 힘을 잃었다. 나무는 윤곽이 아니라 밝은 하늘 위의 어두운 얼룩으로 먼저 보인다.
그런데 선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가느다란 가지들이 짙은 선으로 하늘을 가로지르며 갈라진다. 선은 이제 형태의 바깥을 두르는 데 쓰이지 않고, 흐린 덩어리 속을 지나가는 뼈대로만 남았다. 코로의 전기 작가 알프레드 로보는 하늘 앞에 선 가지와 잎의 실루엣을 보고 이 그림을 거미줄에 비유했다고 메트는 전한다.
아래 가운데에는 웅크린 농촌 여인이 작게 있다. 노란 머릿수건과 파란 소매, 붉은 갈색 치마가 온통 회록색인 화면에서 거의 유일한 선명한 색이다. 메트에 따르면 코로는 처음에 이 여인 옆에 팔을 뻗은 아이를 그렸다가, 너무 일화적이라고 여긴 듯 지웠다. 1870년 살롱에서 비평가들은 이 구도의 고요한 시정을 높이 샀다. 메트 에세이는 이 그림에서 자연이 은빛 안개 속으로 녹아든다고 쓰고, 코로가 늘 작업실로 돌아가 눈으로 겪은 것을 다시 다듬었다고 덧붙인다.
빛이 윤곽을 먹는 자리: 《나무 사이로 난 길》

마지막 그림은 세로 화면이다. 양쪽의 키 큰 나무들이 길 위로 굽어 어두운 터널을 만들고, 길 끝에는 밝은 물가와 한 사람이 서 있다. 왼쪽 아래 앞쪽에서는 분홍 모자를 쓴 여인이 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다.
왼쪽 위, 파란 하늘이 보이는 곳의 잎을 보자. 잎은 부드럽고 납작한 붓 자국이고, 그 사이에 주황과 붉은 점이 섞여 있다. 잎 무리의 가장자리는 하늘 쪽으로 번지듯 풀린다. 굵은 가지만이 어두운 선으로 그 위를 가로지른다. 《빌다브레》와 같은 방식이다. 반면 오른쪽 줄기들 가운데 몇몇은 빛을 받은 쪽이 밝은 회백색으로 또렷하다. 윤곽이 가장 크게 무너지는 곳은 길 끝이다. 밝은 물가와 먼 풍경이 나무 기둥들의 가장자리를 먹어 들어가, 어디까지가 나무이고 어디부터가 빛인지 흐려진다.
메트는 이 그림이 부드러운 붓질로 잎을 줄여 쓰는 언어를 쓰면서도 자연스러운 빛의 효과를 붙잡는 데 계속 주의를 기울였음을 보여 준다고 설명한다. 흐릿함이 곧 대충 그린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가장자리를 푼 자리가 빛이 가장 센 자리와 겹친다.
다른 풍경화 앞에서 해 볼 일
네 점을 나란히 두면 변화의 방향이 보인다. 1820년대의 능선과 1830년대의 참나무에서는 윤곽이 끝까지 경계선이다. 1870년 무렵의 두 그림에서는 잎의 가장자리가 하늘로 풀리고, 선은 가지라는 뼈대로만 남는다. 코로는 선을 버린 것이 아니라 선이 맡는 일을 바꾸었다.
다음에 풍경화를 볼 때는 나무 한 그루를 골라 그 윤곽을 눈으로 따라가 보자. 끝까지 따라갈 수 있으면 그 그림은 형태를 나누어 보여 주고, 중간에 멈추게 되면 형태를 한데 묶어 보여 준다. 그리고 멈춘 자리에 무엇이 있는지 보자. 코로의 경우 그곳에는 대개 가장 밝은 빛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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