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굴레에서』 45장에서 필립이 삶의 의미를 묻자, 시인 크론쇼는 페르시아 양탄자를 보면 언젠가 답이 떠오를 것이라는 말만 남깁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번, 이 소설의 둘째 권에서 그 수수께끼가 풀립니다. 답은 106장에서 나옵니다. 삶에 정해진 의미는 없고, 그래서 필립은 자기 삶의 무늬를 스스로 고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고 나면 양탄자가 다시 나오는 장을 차례로 짚을 수 있고, 106장의 답이 122장의 마지막 선택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볼 수 있습니다. 결말까지 다룹니다.
1권을 다룬 글은 뒤에서 돌아오는 장면으로 14장·28장·45장을 접어 두자고 했습니다. 이 글은 45장의 양탄자를 따라가고, 나머지 두 장면이 돌아오는 자리도 함께 적습니다.

둘째 권은 어떤 책인가
민음사판은 송무가 옮긴 두 권짜리입니다. 2권은 1998년 9월 30일에 596쪽으로 나왔고, 끝에 옮긴이의 작품 해설과 작가 연보가 붙습니다. 원작은 서머싯 몸(1874–1965)이 1915년에 낸 122장짜리 장편입니다. 출판사는 이 소설을 젊은이가 세상에 눈떠 가는 교양소설로 소개하고, 몸이 스물네 살에 같은 기억으로 쓴 원고 『스티븐 케어리의 예술가적 기질』이 출판되지 못한 뒤 그 기억을 이 소설에서 다시 다뤘다고 설명합니다.
출판사와 서점 페이지는 2권이 원작 몇 장부터인지 적지 않습니다. 프로젝트 구텐베르크의 영어 원문을 장별로 나눠 단어 수를 세면 64장 끝이 전체의 50.2%입니다. 그래서 이 글은 65장부터를 ‘뒤쪽 절반’이라 부르고 장 번호를 영어 원작 기준으로 적습니다. 실제 2권의 첫 장과는 몇 장 어긋날 수 있습니다. 뒤쪽 절반의 무대는 대부분 런던이고, 95장에서 트란스발과 전쟁이 시작된 뒤로 그 전쟁이 필립의 생계에까지 닿습니다.
크론쇼가 미뤄 둔 질문
45장은 일요일 저녁 파리의 카페입니다. 의무도 선도 아름다움도 없다면 사람은 무엇 하러 태어나느냐고 필립이 따지는데, 싸구려 깔개를 파는 행상이 들어옵니다. 크론쇼는 식탁보 한 장을 두고 흥정하는 시늉을 하다가 값이 15프랑까지 내려오자 행상을 쫓아 버리고, 클뤼니 박물관의 페르시아 양탄자를 보라고만 말합니다. 50장과 53장에서도 필립은 이 비유를 떠올리지만, 크론쇼는 스스로 찾지 않은 답은 답이 아니라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양탄자가 지나는 길
65장에서 런던으로 옮겨 온 화가 로슨이 크론쇼의 선물 이야기를 꺼냅니다. 필립이 파리를 떠난 직후 크론쇼가 보낸 것으로, 렌 거리의 가게에서 15프랑에 샀다는 낡은 페르시아 양탄자 조각입니다. 크론쇼는 그것이 삶의 의미에 대한 답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45장에서 쫓겨난 행상의 마지막 값과 같은 금액입니다.
79장에서 필립은 케닝턴에 셋방을 얻고 이 양탄자를 들여놓습니다. 82장에서 딘 가의 허름한 식당에서 병든 크론쇼를 다시 만나 양탄자를 기억하느냐고 묻지만, 크론쇼는 답을 찾았느냐고 되물을 뿐 끝내 알려 주지 않습니다. 필립은 83장 끝에서 그를 자기 셋방으로 데려오고, 85장에서 그 방에서 숨진 크론쇼를 발견합니다. 그날 밤 필립을 괴롭히는 것은 방금 끝난 삶이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는 생각입니다.
97장에서 양탄자는 망가집니다. 아기와 함께 필립의 셋방에 들어와 지내던 밀드레드가 떠나며 식칼과 석탄 망치로 방을 부쉈고, 책상 위 벽의 양탄자도 칼자국 세 줄에 너덜너덜해졌습니다. 밀드레드는 그 천을 늘 싫어했고, 거기에 수수께끼의 답이 들어 있다는 필립의 말을 놀림으로 여겨 화를 냈습니다.
독서 노트
양탄자가 지나는 길
45장의 수수께끼가 106장의 답이 되기까지
45장 · 파리의 카페
- 삶의 의미를 묻는 필립에게
- 클뤼니의 양탄자를 보라는 말뿐
65장 · 15프랑짜리 조각
- 필립이 파리를 떠난 뒤 크론쇼가 남긴 선물
- 로슨의 짐과 함께 런던으로 온다
82장 · 답은 스스로
- 병든 크론쇼는 끝내 답을 말하지 않는다
- 85장에서 필립의 셋방에서 숨진다
97장 · 칼자국 세 번
- 떠나는 밀드레드가 셋방을 부순다
- 벽에 걸린 양탄자도 칼에 찢긴다
106장 · 기억 속의 양탄자
- 대영박물관의 묘비들 앞에서 떠올린다
- 의미는 없다, 그러나 무늬는 짤 수 있다
장 번호는 영어 원작(프로젝트 구텐베르크) 기준
106장, 묘비 앞에서 떠오른 답
98장에서 필립은 주식 중개인 매캘리스터에게서 전쟁이 곧 끝나리라는 귀띔을 듣고 남아프리카 광산 주식을 샀다가 크게 잃고 병원 공부를 그만둡니다. 강변 벤치에서 밤을 보내기도 하다가, 102장부터 애설니의 소개로 리젠트 가의 포목점에서 매장 감독으로 일합니다.
106장의 어느 토요일, 필립은 하이델베르크에서 처음 만난 친구 헤이워드가 케이프에 내린 지 얼마 안 되어 장티푸스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는 대영박물관으로 가서 기원전 5~4세기 아테네 석공들이 만든 묘비가 늘어선 방에 앉습니다. 소설은 세월이 꿀빛으로 물들인 대리석과 묘비마다 새긴 작별의 말을 그립니다. 큰일을 해낼 것 같던 친구는 이룬 것 없이 병으로 허무하게 죽었고, 필립이 보기에 크론쇼의 삶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때 크론쇼의 양탄자가 떠오르고, 필립은 답을 알아챕니다. 영어 원문은 그 답을 한 문장으로 적습니다. “Life had no meaning.” 삶에는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필립은 절망하지 않고 기뻐합니다. 소년 시절 신앙을 내려놓았을 때처럼 처음으로 완전히 자유로워졌다고 느낍니다. 1권 28장에서 접어 둔 해방감이 여기로 돌아옵니다.

직조공의 무늬
같은 장에서 둘째 생각이 따라오고, 필립은 크론쇼가 양탄자를 준 까닭이 이것이었다고 짐작합니다. 직조공이 쓸모를 따지지 않고 보기 좋아서 무늬를 짜듯, 사람도 자기가 한 일과 느낌과 생각을 실 삼아 삶을 하나의 무늬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삶이 무엇을 위해 있지 않아도 무늬는 짤 수 있습니다.
무늬는 한 가지가 아닙니다. 태어나 자라고 결혼해 아이를 낳고 일하다 죽는 무늬를 소설은 가장 뚜렷하고 완전하며 아름답다고 하고, 행복을 넣지 않고 성공도 노리지 않는 복잡한 무늬들도 있다고 합니다. 헤이워드의 삶은 다 짜이기 전에 우연이 끊었고, 크론쇼의 삶은 보는 자리를 바꿔야 그 값이 보이는 무늬입니다. 106장의 필립은 행복을 바라는 마음을 내려놓고, 기쁨도 고통도 무늬의 재료로 여기기로 합니다.
하나 눈여겨볼 것이 있습니다. 45장에서 크론쇼가 가리킨 곳도, 답이 오는 곳도 박물관입니다. 그런데 106장의 필립 앞에 있는 것은 양탄자가 아니라 묘비이고, 양탄자는 97장에서 이미 찢겼습니다. 답은 물건을 들여다볼 때가 아니라 친구의 죽음을 겪고 그 물건을 기억해 낼 때 옵니다.
무늬라는 생각을 어디에 쓰나
뒤쪽 절반에서 삶을 무늬에 빗대는 장은 106장 말고 112·116·121·122장입니다. 112장에서 큰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필립은 터캔베리를 걷다 외로움에 빠지자, 지난 불행도 무늬를 꾸미는 장식일 뿐이라며 스스로를 다그칩니다. 116장, 의학교 마지막 해의 필립은 무늬를 짜는 일에 비하면 물감과 글이 하찮다고 여기고, 피커딜리에서 로슨을 보자 옆길로 피하며 그 우정은 이미 무늬에 짜 넣은 한 가닥이었다고 정리합니다. 위로가 되던 비유가 친구를 멀리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117장에서 도싯셔 판리의 늙은 의사 사우스는 한 달 대진을 하던 필립에게 동업을 제안하지만, 필립은 스페인을 거쳐 동방으로 가려는 계획 때문에 거절합니다. 121장에서는 펀의 홉 밭에서 가까워진 애설니의 맏딸 샐리가 아이를 가졌을지 모른다고 하자, 필립은 그런 사고로 삶의 무늬를 흐트러뜨릴 수 없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다가 곧 그러지 못할 것을 알고 결혼과 사우스의 제안을 택합니다.
독서 노트
무늬라는 생각이 쓰이는 다섯 자리
106장에서 얻은 생각을 필립은 어디에 쓰나
106장 · 여러 가지 무늬
- 가장 뚜렷한 무늬: 태어나 자라고 결혼해 아이를 낳고 일하다 죽는 삶
- 행복을 넣지 않는 복잡한 무늬들도 있다
- 필립은 행복을 바라는 마음을 내려놓는다
112장 · 위로
- 큰아버지 장례 뒤 외로움에 빠지자
- 지난 불행도 무늬의 장식이라며 스스로를 다그친다
116장 · 거리 두기
- 물감과 글이 하찮아 보인다
- 로슨과의 우정도 이미 짜 넣은 한 가닥으로 여긴다
121장 · 핑계
- 샐리의 일로 무늬를 흐트러뜨릴 수 없다고 다짐하지만
- 곧 결혼을 택한다
122장 · 가장 단순한 무늬
- 잘못 안 일이라는 말에 기쁨 대신 막막함
- 가장 단순한 무늬가 가장 완전하다
뒤쪽 절반에서 삶을 무늬에 빗댄 장은 이 다섯 곳뿐
122장, 가장 단순한 무늬
마지막 장에서 필립은 내셔널 갤러리에서 샐리를 기다립니다. 가는 길에 밀드레드처럼 걷는 낯선 여자를 보고 가슴이 내려앉으며, 그 열정에서 끝내 다 벗어나지는 못하리라는 것을 압니다. 샐리는 잘못 안 일이었다고 말합니다. 계획을 지킬 수 있게 됐는데 필립에게 찾아온 것은 기쁨이 아니라 막막함입니다. 그제야 그는 스스로를 속였음을, 결혼을 생각한 것이 희생이 아니라 아내와 집과 사랑을 바란 마음 때문이었음을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106장에서 이미 보았던 것, 가장 단순한 무늬가 가장 완전한 무늬이기도 하다는 것을 떠올리며 청혼합니다.
크론쇼의 양탄자가 준 답은 두 겹입니다. 삶에는 미리 정해진 의미가 없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자기 삶의 무늬를 고를 수 있습니다. 106장의 필립은 이 답을 얻고 행복을 바라는 마음부터 내려놓았고, 122장의 필립은 같은 답을 쥔 채 행복이 들어가는 가장 단순한 무늬를 고릅니다. 답이 바뀐 것이 아니라 답을 쓰는 방식이 바뀐 것입니다.
2권을 읽을 때 볼 것
뒤쪽 절반은 필립이 사는 곳과 하는 일이 바뀌는 자리에서 여섯 구간으로 나뉩니다. 새로 나오는 주요 인물은 노라 네즈빗(66장), 매캘리스터(67장), 의사 타이렐(81장), 외과의 제이콥스(84장), 애설니(86장)와 맏딸 샐리(87장), 사우스(116장)입니다.
독서 노트
뒤쪽 절반의 여섯 구간
영어 원작 65~122장, 사는 곳과 하는 일로 나눔
65~78장 · 노라와 밀드레드
- 노라 네즈빗과 연인이 된다
- 돌아온 밀드레드가 그리피스와 떠난다
79~90장 · 병원과 애설니의 집
- 외래·입원 실습
- 85장에서 크론쇼가 죽는다
- 환자 애설니와 그의 가족을 만난다
91~97장 · 케닝턴의 밀드레드
- 밀드레드와 아기가 셋방에 들어온다
- 94장 발 수술
- 97장 부서진 방
98~111장 · 주식, 가난, 포목점
- 98장 전쟁 중에 산 주식으로 돈을 잃는다
- 102장 포목점 매장 감독
- 107장부터 의상 도안 담당
112~117장 · 유산과 졸업장
- 큰아버지의 유산으로 병원에 돌아간다
- 도싯셔 판리에서 한 달 대진
- 117장에서 동업 제안을 거절한다
118~122장 · 펀의 홉 밭, 그리고 런던
- 애설니 가족과 홉을 딴다
- 122장 샐리, 그리고 내셔널 갤러리
민음사판 2권이 몇 장부터인지는 출판사·서점 페이지에 없음 · 65장부터는 단어 수로 어림한 뒤쪽 절반
접어 둔 다른 두 장면도 돌아옵니다. 14장에서 발이 낫기를 기도했던 필립은 94장에서 제이콥스에게 수술을 맡깁니다. 다른 발처럼 될 수는 없다는 말을 듣고, 산을 옮기는 신에게 빌던 일을 떠올리며 쓴웃음과 함께 기적은 바라지 않는다고 답합니다. 28장의 해방감은 앞에서 본 대로 106장으로 돌아옵니다. 질문은 박물관을 가리키며 미뤄지고 답은 대영박물관에서, 결정은 내셔널 갤러리에서 나온다는 것도 보아 둘 만합니다.
민음사판은 송무의 번역이고, 2권 끝의 작품 해설과 작가 연보를 함께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글의 인물·지명 표기는 영어 발음에 가깝게 적은 것이라 번역본과 다를 수 있습니다.
2권을 펼치면 양탄자가 나오는 65·79·82·97·106장(65장은 1권 끝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과 삶을 무늬에 빗대는 106·112·116·121·122장에 표시해 두세요. 그리고 무늬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필립이 그 말로 무엇을 하려는지 한 줄씩 적어 보세요. 같은 비유가 위로가 되고 핑계가 되다가, 마지막 장에서 결정의 근거가 되는 과정이 보입니다.
이 기록에 대화를 더해 주세요.
궁금한 점, 다른 접근, 직접 해 본 결과를 나눠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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