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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0/05 UPDATE

CLASSICS / FIELD NOTES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헉은 왜 편지를 찢고 지옥에 가겠다고 할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번, 마크 트웨인 『허클베리 핀의 모험』 읽기 안내. 김욱동 옮김 판본의 바탕, 마을·강·사기꾼·농장의 네 무대, 15·16·31장에 쌓이는 헉의 ‘양심’ 장면, 마지막 열두 장을 둘러싼 논쟁과 읽으면서 표시해 둘 것을 정리했습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번은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다. 술주정뱅이 아버지에게서 달아난 소년 헉과, 팔려 갈 처지에서 도망친 노예 짐이 뗏목을 타고 미시시피 강을 내려가는 이야기다. 모험 소설로 알려져 있지만, 이 책의 한가운데에는 헉이 자기 손으로 쓴 편지 한 장을 찢는 장면이 있다. 이 글을 읽고 나면 헉이 왜 그 편지를 찢으면서 “지옥에 가겠다”고 말하는지, 그 말이 나오기까지 어떤 장면들이 쌓이는지 짚으며 읽을 수 있다. 마지막 열두 장을 두고 오래 이어진 논쟁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함께 정리한다.

김욱동 옮김, ‘완전판’을 옮긴 672쪽

민음사판은 영문학자 김욱동이 옮겨 1998년에 나왔고, 672쪽 분량이다. 출판사 소개에 따르면 이 번역은 1996년 미국 랜덤하우스에서 나온 이른바 ‘완전판’을 바탕으로 했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작품 전반부의 친필 원고가 발견되면서 다시 엮은 판본으로, 기존 텍스트에 없던 에피소드와 표현이 들어 있다. 책 끝에는 옮긴이의 작품 해설과 작가 연보가 붙어 있다.

마크 트웨인의 본명은 새뮤얼 랭혼 클레멘스다. 1835년 미주리 주에서 태어나 미시시피 강가의 해니벌에서 자랐고, 인쇄소 식자공과 증기선 수로 안내인, 신문 기자를 거쳐 작가가 되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1884년 12월 영국에서, 이듬해 2월 미국에서 나왔고, 트웨인은 1910년 세상을 떠났다. 소설은 헉의 말투 그대로 쓰였다. 첫 문장부터 헉은 자기가 『톰 소여의 모험』이라는 책에 나왔던 아이라고 소개하며, 그 책을 쓴 트웨인 씨가 대체로 사실을 말했다고 능청을 떤다.

1885년 미국 초판에 실린 E. W. 켐블의 펜 삽화. 숲속 나무 사이에서 무릎을 꿇은 짐이 맨발에 긴 원피스를 입은 헉의 등 뒤 옷을 여며 주고, 헉은 두 팔을 들어 소매를 내려다본다. 오른쪽 바닥에 벗어 둔 옷가지가 있고, 그림 아래에 “A FAIR FIT.”라는 제목이 적혀 있다.
E. W. 켐블 그림, 「A Fair Fit」(10장), 마크 트웨인 『허클베리 핀의 모험』 미국 초판(1885)의 삽화, 망판 인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Gift of Estate of Jane Erdmann Whitney, 1986, 1986.1145.27. 퍼블릭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숏츠로 보기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006 | 허클베리 핀의 모험YouTube ↗

네 무대: 마을, 섬과 강, 사기꾼들, 농장

마흔두 장과 ‘마지막 장’으로 된 긴 소설이지만, 무대를 기준으로 나누면 흐름이 잘 보인다. 1~7장은 미시시피 강가의 마을이다. 더글러스 과부와 그 자매인 왓슨 아줌마는 헉을 ‘교양 있게’ 만들려 하고, 돈 냄새를 맡고 나타난 아버지는 헉을 강 건너 오두막에 가둔다. 헉은 멧돼지를 잡아 그 피로 자기가 살해당한 것처럼 꾸미고 달아난다.

8~18장은 섬과 강이다. 잭슨 섬에 숨어 있던 헉은 왓슨 아줌마의 노예 짐을 만난다. 짐은 왓슨 아줌마가 자신을 800달러에 남부 뉴올리언스 쪽으로 팔아넘기려 한다는 말을 엿듣고 도망쳐 왔다. 둘의 목표는 오하이오 강과 만나는 카이로까지 가서 강을 거슬러 자유주로 들어가는 것이었지만, 16장에서 안개 속에 카이로를 지나쳐 버린다. 19~31장에서는 공작과 왕을 자처하는 두 사기꾼이 뗏목에 올라타 강가 마을마다 사기를 벌이고, 결국 왕은 짐을 40달러에 팔아넘긴다. 32장부터는 짐이 붙잡혀 있는 펠프스 농장이 무대다. 헉을 톰 소여로 착각한 이 집에 진짜 톰이 나타나면서 이야기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바뀐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네 무대로 나눈 흐름도. 1~7장 마을(과부 집의 교육, 아빠에게 갇혔다가 죽은 척하고 달아남), 8~18장 섬과 강(잭슨 섬에서 짐을 만남, 16장 안개 속에서 카이로를 지나침, 그레인저포드 집안 싸움), 19~31장 공작과 왕(사기꾼 둘이 뗏목에 올라탐, 윌크스 집안 사기, 31장 왕이 짐을 40달러에 팖), 32장~마지막 장 펠프스 농장(톰 소여의 탈출 작전, 짐은 이미 유언으로 풀려나 있었음).
이야기는 마을에서 시작해 강을 따라 내려가고, 다시 뭍의 농장에서 끝난다.

“좋아, 그럼 지옥에 가겠어”까지

31장의 편지 장면은 갑자기 나오지 않는다. 15장에서 안개 속에 서로를 잃었다가 다시 만난 날, 헉은 모든 것이 꿈이었다고 짐을 속인다. 짐은 헉을 잃은 줄 알고 얼마나 상심했는지 말한 뒤, 친구를 부끄럽게 만드는 사람이 쓰레기라고 말하고 오두막으로 들어가 버린다. 헉은 15분을 망설인 끝에 짐에게 사과하러 가고, 그 뒤로 다시는 짐에게 못된 장난을 치지 않았다고 말한다.

16장에서 카이로가 가까워졌다고 믿자 헉의 ‘양심’이 그를 괴롭힌다. 헉에게 양심은 왓슨 아줌마의 재산을 빼돌리는 일을 돕고 있다고 꾸짖는 목소리다. 헉은 날이 밝으면 뭍에 가서 신고하겠다고 마음먹고 카누를 저어 가지만, 도망 노예를 찾는 두 남자에게 뗏목의 사람은 백인이라고 답하고, 뗏목에 아픈 아버지가 있다며 말을 얼버무려 그들이 천연두라고 믿고 물러나게 만든다.

31장에서 헉은 마침내 왓슨 아줌마에게 짐이 펠프스 씨네 붙잡혀 있다는 편지를 쓴다. 쓰고 나니 처음으로 죄를 씻은 듯 마음이 가볍다. 그런데 기도하려던 참에 강을 내려오던 날들이 떠오른다. 자기 대신 불침번을 서 주던 짐, 안개 속에서 돌아온 자신을 반기던 짐, 천연두 거짓말 뒤에 헉을 하나뿐인 친구라 부르던 짐이다. 헉은 편지를 집어 들고 떨면서 잠시 숨을 고른 뒤 말한다. 좋아, 그럼 지옥에 가겠어. 그리고 편지를 찢는다.

이 장면에서 눈여겨볼 점은 헉이 끝까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헉은 노예제 사회가 가르친 규칙을 ‘양심’이라 부르고, 그 규칙을 어기는 자신을 나쁜 아이라고 믿는다. 그런데도 그는 짐과 함께 지낸 시간을 택한다. 독자는 헉보다 한 걸음 앞서, 그가 버린 것이 양심이 아니라 사회의 편견이었음을 알아보게 된다.

헉이 짐을 두고 흔들리는 세 장면. 15장 안개 뒤 짐을 놀렸다가 짐이 '쓰레기'라고 하자 15분 망설인 끝에 사과함, 16장 신고하러 가다 총을 든 두 남자에게 뗏목의 사람은 백인이라고 답하고 아빠가 천연두에 걸린 것처럼 믿게 함, 31장 왓슨 아줌마에게 짐의 위치를 알리는 편지를 썼다가 '좋아, 그럼 지옥에 가겠어' 하고 찢음.
헉이 '양심'이라 부르는 것은 노예제 사회가 가르친 규칙이다. 그는 매번 그 규칙을 어기면서 자신이 나쁘다고 믿는다.

뗏목 위와 뭍 위

헉과 짐은 낮에는 강가 덤불에 뗏목을 숨기고 밤에 떠내려간다. 뗏목 위에서 둘은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웃는다. 그러나 헉이 뭍에 내릴 때마다 만나는 어른들은 다르다. 그레인저포드 대령의 집은 예의 바르고 교양 있지만, 셰퍼드슨 집안과 대를 이어 총을 겨누다 아이들까지 죽는다. 21~22장의 마을에서는 셔번 대령이 술에 취해 떠들던 보그스를 대낮에 쏘아 죽이고, 몰려든 군중을 비웃으며 흩어 버린다. 공작과 왕이 뗏목에 올라탄 뒤로는 그 뗏목마저 뭍의 사기와 거짓말이 지배한다.

뗏목 위와 뭍의 인물 비교. 뗏목 위의 헉과 짐은 낮에 숨고 밤에 떠내려가며 짐이 헉 대신 불침번을 선다. 과부와 왓슨 아줌마는 헉을 교양 있게 만들려 하고 왓슨 아줌마는 짐을 800달러에 팔려 한다. 그레인저포드 집안은 체면 때문에 대를 이어 싸우고 셔번은 대낮에 보그스를 쏜다. 공작과 왕은 뗏목까지 차지하고 톰은 책에서 배운 모험을 꾸민다.
뗏목은 잠깐의 피난처일 뿐이다. 뭍의 규칙은 사기꾼과 함께 뗏목 위로도 올라온다.

마지막 열두 장을 어떻게 읽을까

펠프스 농장에서 톰 소여는 짐을 바로 빼내는 대신, 모험 소설에서 읽은 대로 땅굴을 파고, 밧줄 사다리를 넣은 파이를 굽고, 짐에게 일기를 쓰게 하는 요란한 탈출 작전을 꾸민다. 그 과정에서 톰은 다리에 총을 맞는다. 짐은 의사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겠다며 도망을 미루고, 숨어 있다가 나와 의사를 도와 톰을 돌본 끝에 다시 붙잡힌다. 그리고 마지막에 밝혀진다. 왓슨 아줌마는 두 달 전에 죽으면서 유언으로 짐을 풀어 주었고, 톰은 그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이 결말은 오래 논쟁거리였다. 헤밍웨이는 1935년 『아프리카의 푸른 언덕』에서 현대 미국 문학이 모두 이 책에서 나왔다고 높이 평가하면서도, 짐이 사기꾼들에게 팔려 가는 대목에서 읽기를 멈추라고, 그 뒤는 속임수라고 썼다. 반대로 읽을 수도 있다. 31장에서 지옥까지 각오하고 결심한 헉이, 톰이 나타나자 다시 톰의 놀이에 끌려가는 모습 자체가 이 소설이 보여 주는 뭍의 힘이라는 것이다. 어느 쪽으로 읽을지는 독자가 정할 몫이다.

읽으면서 표시해 둘 것

첫째, 책 앞의 두 글이다. 작가는 이 이야기에서 동기나 교훈이나 줄거리를 찾으려는 사람을 처벌하겠다는 익살스러운 경고문을 붙였고, 이어서 미주리 흑인 방언과 남서부 변경 방언 등 여러 방언을 일부러 구분해 썼다고 밝혔다. 번역본에서 인물마다 말투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보자.

둘째, 단어의 문제다. 원문에는 당시 흑인을 낮춰 부르던 말이 이백 번 넘게 나오고, 민음사판 목차에도 ‘검둥이’라는 말이 보인다. 미국도서관협회는 이 책을 1990년대 미국에서 다섯 번째로 많이 이의 제기를 받은 책으로 꼽았다. 이 말을 누가, 누구에게, 어떤 장면에서 쓰는지 표시해 두면 소설이 그 시대의 말을 어떻게 드러내는지 보인다.

셋째, ‘교양 있게 만든다’는 말이다. 1장에서 헉은 과부가 자기를 교양 있게 만들려 해서 집을 나갔다고 말한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에서 헉은 샐리 아줌마가 자기를 입양해 교양 있게 만들려 하니 남들보다 먼저 서부의 인디언 준주로 떠나야겠다고 말한다. 같은 말로 시작하고 같은 말로 끝난다.

한 가지만 해 본다면

15장과 16장, 31장에 책갈피를 끼워 두자. 31장의 편지 장면에 이르면 바로 넘어가지 말고, 헉이 편지를 들고 떠올리는 장면들을 앞의 두 책갈피에서 찾아 다시 읽어 본다. 헉의 결심이 한순간의 기분이 아니라 강 위에서 쌓인 날들의 무게였다는 것이, 이 한 장면을 읽는 가장 좋은 열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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