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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1/07 UPDATE

ART / FIELD NOTES

동기창이 옛 화가를 따라 그린 산수화, 어디가 닮았을까

1617년 《청변도》와 1620년대 《계산월관도》는 둘 다 10세기 화가 동원을 따랐다고 적혀 있지만 생김새가 다릅니다. 클리블랜드 미술관과 메트에 있는 동기창의 네 점에서 무엇이 바뀌고 무엇이 남았는지 보고, 그가 남긴 그림에 관한 말과 견주어 봅니다.

명나라 말의 화가 동기창(董其昌, 1555–1636)의 산수화 가운데에는 그림 위에 "북원(北苑)의 방식으로"처럼 옛 화가를 따랐다고 적은 것들이 있습니다. 북원은 10세기 화가 동원(董源)을 부르는 이름입니다. 그런데 같은 동원을 따랐다는 두 그림을 나란히 놓으면 화면 비율도, 구도도, 먹의 느낌도 다릅니다. 동기창이 옛 화가를 따라 그린 산수화는 어디가 닮았을까요?

클리블랜드 미술관의 족자 한 점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족자 두 점, 화첩 한 점을 연대순으로 봅니다. 네 점 모두 미술관이 퍼블릭 도메인(CC0)으로 공개한 이미지입니다. 다 읽고 나면 '누구를 따라 그렸다'는 글씨가 있는 산수화 앞에서 같은 경치를 찾는 대신, 비탈에 쓴 붓질의 종류와 덩어리를 쌓는 방식을 짚어 볼 수 있습니다.

메트의 소개로는 동기창은 17세기 초의 가장 뛰어난 산수화가이자 이론가였고, 옛 대가를 글자 그대로 흉내 내기보다 정신으로 통하기를 주장했습니다. 그 정신이 그림의 어디에 남는지가 이 글의 질문입니다.

1617년 《청변도》: 북원의 방식으로

오른쪽 위 첫째 글씨에 따르면 이 그림은 북원의 방식으로 그린 청변산이고, 정사년(1617) 5월 그믐에 한 윗사람에게 보낸 것입니다. 동기창은 변산에 가 본 적이 있습니다. 저장성 우싱과 타이후 호수에서 멀지 않은 낮은 산줄기의 한 부분입니다. 그림의 이름은 가 본 산에서, 그리는 방식은 10세기 화가에게서 온 셈입니다.

동기창의 《청변도》. 아주 길쭉한 족자에서 둥근 산 덩어리들이 아래에서 위로 비틀리며 쌓여 올라가고, 비탈마다 긴 붓질이 나란히 내려갑니다. 능선을 따라 짙은 작은 나무가 줄지어 있고, 왼쪽 가운데의 물과 맨 위 봉우리 아래의 구름은 비워 둔 종이입니다. 아래쪽에는 가지를 넓게 편 나무들이 있고, 위쪽에는 오른쪽부터 왼쪽 끝까지 두 묶음의 글씨가 있습니다.
동기창(董其昌), 《청변도(青弁圖)》(Mt. Qingbian), 1617년, 족자, 종이에 먹, 그림 225 × 67.6 cm. 클리블랜드 미술관, Leonard C. Hanna Jr. Fund, 1980.10. CC0(Cleveland Museum of Art Open Access). 클리블랜드 미술관 작품 기록

그림은 높이 225cm, 폭 67.6cm로 높이가 폭의 세 배가 넘습니다. 그 긴 화면을 둥근 산 덩어리들이 아래에서 위로 비틀리며 채웁니다. 덩어리마다 비탈을 따라 길고 조금 휜 붓질이 나란히 내려가고, 능선 가장자리는 종이를 하얗게 남겨 덩어리끼리 갈라 놓습니다. 능선 위에는 작고 짙은 나무가 줄지어 섰습니다. 왼쪽 가운데의 넓은 물과 꼭대기 봉우리 아래의 구름에는 아무것도 그리지 않았습니다.

클리블랜드 미술관의 해설로는 동기창은 산의 모양을 짜 맞춰 그림 전체에 기(氣)의 흐름과 세(勢)를 일으키고, 그의 그림에서 붓과 먹은 그려진 형태와 따로 생명을 얻습니다. 이 그림에서도 변산이 어떤 산인지 알려 주는 단서보다 덩어리가 휘감아 올라가는 움직임이 먼저 보입니다.

1620년대 《계산월관도》: "자못 닮았다"

《계산월관도(溪山樾館圖)》는 동원의 같은 이름 그림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오른쪽 위 여섯 줄 글씨에서 동기창은 예전에 어느 환관의 처소에서 동원의 《계산월관도》를 보고 밑그림을 떠서 상자에 넣어 두었다가 이제야 완성했다고 적었습니다. 끝에는 "자못 닮았다(頗有肖似)"고 덧붙였습니다.

동기창의 《계산월관도》. 검은 바탕 위에서 찍은 족자 사진이고, 왼쪽 바깥에 촬영용 회색 막대가 있습니다. 화면 앞쪽 가운데를 굵은 줄기의 큰 나무 무리가 차지하고, 왼쪽 위에는 밝은 윗면과 어두운 골이 번갈아 겹친 바위산이, 오른쪽 멀리에는 둥근 봉우리가 있습니다. 나무 사이로 집 몇 채가 보이고, 오른쪽 위에 여섯 줄의 글씨가 있습니다.
동기창, 《계산월관도(溪山樾館圖)》(Shaded Dwellings among Streams and Mountains), 1622–25년경, 족자, 종이에 먹, 그림 158.4 × 72.1 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Gift of Douglas Dillon, 1979, 1979.75.2. 퍼블릭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메트 작품 기록

1617년 그림과 견주면, 같은 동원을 따랐다는 두 그림이 사뭇 다릅니다. 이 그림은 높이가 폭의 두 배 남짓이라 덜 길쭉하고, 앞쪽 가운데를 큰 나무 무리가 차지합니다. 산은 왼쪽 위에 몰려 있고 오른쪽 멀리에 둥근 봉우리가 하나 있습니다. 먹도 1617년 그림보다 젖어 보여서 잎과 그늘이 번지듯 짙습니다.

바뀌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바위와 산의 비탈에는 여기서도 길게 휘며 내려가는 붓질이 나란히 겹치고, 능선에는 작은 나무가 줄지어 있습니다. 메트는 이 그림을 바위와 나무의 모양을 입방체 같은 덩어리로 짠 서예적 연구로 보고, 동기창이 산수에서 양(positive)과 음(negative)의 무늬를 번갈아 놓았다고 해설합니다. 이 해설과 따로 눈으로 견주면, 밝게 남긴 윗면과 어둡게 칠한 골을 번갈아 겹치는 방식은 1617년 그림과 같습니다.

미술관 기록에 동원의 원작이 남아 있는지 나오지 않아, 동기창의 '닮았다'를 원작과 대조할 수는 없습니다. 볼 수 있는 것은 같은 화가를 따랐다는 두 그림 사이에서 무엇이 바뀌고 무엇이 남았는가입니다.

예찬을 따른 나무: 경치가 아니라 붓 뜻

셋째 그림은 원나라 화가 예찬(倪瓚)을 따랐습니다. 오른쪽 위 두 줄 글씨는 "예 고사의 붓 뜻을 본뜸(擬倪高士筆意)"입니다. 본뜬 것을 붓 뜻(筆意)이라고 적었고, 경치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동기창의 《예찬 풍으로 그린 나무 있는 산수》. 둔덕 위에 가늘고 키 큰 나무들이 모여 서 있고, 아래쪽에는 짧게 휘감기는 붓질로 쌓은 둥근 바위 무더기가 있습니다. 나무 꼭대기 위로 화면의 위 4분의 1 남짓은 비어 있고, 그 오른쪽 위에 두 줄, 왼쪽 위에 작은 다섯 줄의 글씨가 있습니다. 족자 왼쪽에는 글씨가 쓰인 긴 띠가 함께 찍혀 있습니다.
동기창, 《예찬 풍으로 그린 나무 있는 산수》(Landscape with Trees in the Manner of Ni Zan (1301–1374)), 1622–25년경, 족자, 종이에 먹, 그림 115.6 × 45.7 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Bequest of John M. Crawford Jr., 1988, 1989.363.99. 퍼블릭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메트 작품 기록

둔덕 위에 가늘고 키 큰 나무 몇 그루가 모여 서 있고, 아래쪽에 바위 무더기가 있습니다. 화면의 위 4분의 1 남짓은 글씨 말고는 빈 종이입니다. 먹은 마르고 옅으며, 바위는 짧게 휘감기는 붓질을 겹겹이 쌓아 둥글게 만들었습니다. 메트에 따르면 동기창은 예찬의 그림을 동원 양식의 서예적 추상으로 보았고, 동원의 '삼베 올(hemp-fiber)' 준법으로 예찬의 산수 어법을 다시 만들었습니다.

그림에 붙은 두 제발도 같은 계보를 말합니다. 왼쪽 위 작은 글씨에서 진계유(陳繼儒, 1558–1639)는 황공망·왕몽·오진·예찬이 모두 동원의 붓에서 나왔다고 적었습니다. 왼쪽 띠에 1786년 글을 쓴 왕문치(王文治, 1730–1802)는 이 그림이 예찬을 따랐는데도 붓끝에 황공망의 장기가 있다고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동원을 스승으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풀었습니다.

1630년 화첩: 붓질 두 가지를 맞세우다

화첩 《옛 대가를 따른 산수》는 한 면이 24.4 × 16 cm인 여덟 면으로 되어 있습니다. 동기창은 한 면에 경오년(1630) 9월 9일에 이 여덟 경치를 그렸다고 쓰고, 끝에 일흔여섯 늙은이(七十六翁)라고 적었습니다.

메트는 이 화첩을 대비되는 붓질 몇 가지로 송·원의 양식을 두루 풀어낸 것으로 봅니다. 축은 둘입니다. 둥글고 나란한 '삼베 올(hemp-fiber)' 붓질의 '흙산(earthen)'과, 모나고 비스듬한 '접은 띠(folded-ribbon)' 붓질의 '바위산(rocky)'입니다. 첫 두 면에서는 동기창이 예찬의 이른 양식과 늦은 양식으로 여긴 것을 이 두 붓질로 맞세웠습니다. 한 글 면에 동기창이 쓴 '이 두 폭은 예찬 그림의 정수'라는 말은 이 첫 두 면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뒤의 면들에서는 흙산과 바위산을 여러 방식으로 맞세워 북송의 대표 양식들을 불러냅니다. 다른 한 면에는 〈강산소사(江山蕭寺)〉라는 제목 뒤에 거연(巨然)의 붓을 본떴다고 적었습니다.

동기창의 화첩 《옛 대가를 따른 산수》 가운데 한 면. 위쪽에는 뾰족한 작은 나무가 줄지어 서고 짧게 비스듬히 찍은 붓질과 점으로 덮인 산줄기, 그리고 왼쪽의 집이, 아래쪽에는 잎 모양이 서로 다른 나무 여러 그루와 왼쪽의 작은 다리가 있습니다. 산과 나무 사이로 빈 띠가 지나가고, 오른쪽 위에 세로 글씨 巖居高士圖가 있습니다.
동기창, 화첩 《옛 대가를 따른 산수》(Landscapes after old masters) 가운데 〈암거고사도(巖居高士圖)〉라고 적힌 면, 1630년 기년, 여덟 면 화첩, 종이에 먹, 각 면 24.4 × 16 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Edward Elliott Family Collection, Gift of Douglas Dillon, 1986, 1986.266.5a–k. 퍼블릭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메트 작품 기록

미술관이 대표 이미지로 공개한 면은 〈암거고사도(巖居高士圖)〉입니다. 이 면에는 어느 대가를 따랐는지 적혀 있지 않아 여기서도 정하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만 적으면, 위쪽 산에는 뾰족한 작은 나무들이 줄지어 섰고 비탈은 짧게 비스듬히 찍은 붓질과 점으로 덮였습니다. 동원을 따른 두 족자의 비탈에서 길게 내려가던 붓질과는 결이 다릅니다. 아래쪽에는 잎 모양이 서로 다른 나무 여러 그루와 작은 다리가 있습니다.

동기창의 말: 베끼기는 쉽고 신기는 전하기 어렵다

닮음을 어디서 찾을지에 대해서는 동기창 자신이 남긴 말이 있습니다. 《화선실수필(畫禪室隨筆)》 권2의 한 대목은 서예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왕희지 부자의 글씨가 제·양 무렵에 멋을 잃었는데, 당나라 초의 서예가들이 그 법을 바꾸자 맞지 않으면서 도리어 맞았다(不合而合)는 것입니다. 이유는 이렇게 댑니다. "베끼기는 가장 쉽고, 신기(神氣)는 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臨摹最易,神氣難傳故也)."

그는 같은 생각을 그림으로 잇습니다. 거연도, 황공망도, 예찬도 북원을 배웠지만 "하나의 북원인데 저마다 닮지 않았다(一北苑耳,而各各不相似)". 속된 사람이 했다면 원본과 똑같았을 텐데 그래서야 어찌 후세에 전하겠느냐고 묻습니다. 서로 다른 화가들을 두고 한 말이지만, 한 화가의 그림에 넓혀 읽으면 동원을 따른 그림이 동원과 같지 않은 것도 실패라기보다 그가 바란 쪽에 가깝습니다. 그렇다고 닮음을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계산월관도》는 동원의 그림 한 점을 뜬 밑그림에서 나왔고 그는 자못 닮았다고 적었습니다.

같은 권2에는 대가의 집안을 가르는 자리를 짚은 대목도 있습니다. "그림 속 산수는 위치(位置)와 준법(皴法)이 모두 저마다 집안이 있어 서로 통할 수 없다." 나무만은 그렇지 않아서 여러 대가의 나무를 두루 써도 된다고 했습니다. 동기창이 집안의 표지로 꼽은 것은 나무가 아니라 산수의 배치와 준법이었습니다.

권4의 첫 문장은 더 짧습니다. "경치의 기이함으로 따지면 그림이 실제 산수만 못하고, 붓과 먹의 정묘함으로 따지면 실제 산수는 결코 그림만 못하다(以蹊徑之怪奇論,則畫不如山水;以筆墨之精妙論,則山水決不如畫)."

따라 그린 산수화 앞에서 볼 것

세 대목을 네 그림에 비추면 이렇게 읽을 수 있습니다. 같은 동원을 따랐다는 두 족자에서 화면 비율과 구도는 바뀌었고, 둥근 덩어리를 쌓고 비탈에 휜 붓질을 나란히 겹치는 방식은 남았습니다. 예찬을 따른 그림에서는 동원의 붓질이 예찬의 빈 화면 안으로 들어왔고, 화첩에서는 대가를 따르는 일이 붓질의 종류를 고르고 맞세우는 일이 되었습니다.

다만 동기창은 위치, 곧 배치도 집안을 가른다고 했으므로 그의 생각을 붓질 하나로 줄일 수는 없습니다. 그가 말한 위치가 화면 전체의 구도인지 덩어리를 놓는 방식인지, 구도가 다른 두 족자를 그 말과 어떻게 맞출지는 여기 모은 자료로 답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누구를 따라 그렸다는 글씨가 있는 산수화 앞에서는 같은 산을 찾지 말고 비탈 하나를 골라 붓질부터 보십시오. 둥글게 휘며 나란히 겹치는지, 모나게 꺾이며 비스듬히 놓이는지를 봅니다. 길이는 이 글의 기준이 아니어서, 예찬 풍 그림의 바위처럼 붓질이 짧아도 둥글게 휘며 결을 맞춰 겹치면 삼베 올 쪽으로 봅니다. 그다음 덩어리가 어떻게 쌓였고 종이가 어디 비어 있는지를 봅니다. 동기창의 그림에서 닮음은 경치보다 그 붓질과 쌓는 방식에서 먼저 드러납니다.

끝 · END OF 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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