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번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이다. 아버지의 유령에게서 살해의 진상을 들은 덴마크 왕자가 복수를 맹세하고도 좀처럼 칼을 뽑지 않는 이야기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글을 읽고 나면 다섯 막 가운데 햄릿이 멈추는 장면과 망설임 없이 움직이는 장면을 구분해 짚고, 그와 같은 처지에 놓인 두 아들을 곁에 두고 이 극을 따라 읽을 수 있다.
최종철 옮김, 아든 판을 바탕으로 한 번역
민음사판 『햄릿』은 최종철 교수가 옮겨 1998년에 나왔다. 248쪽 분량에 등장인물 목록, 제1막부터 제5막까지의 본문, 옮긴이의 작품 해설과 작가 연보가 실려 있다. 출판사 책 소개에 따르면 옮긴이는 아든(Arden) 판 셰익스피어를 주된 대본으로 삼고, 뉴 케임브리지 판과 리버사이드 판을 함께 참조했다.
대본이 왜 중요한지는 이 극이 전해진 방식을 보면 알 수 있다. 셰익스피어의 극은 극단의 재산이었고, 『햄릿』도 작가가 직접 펴낸 책이 아니다. 지금 전하는 초기 텍스트는 1603년에 나온 1사절판, 이를 고치고 늘린 1604년의 2사절판, 그리고 셰익스피어가 죽은 뒤 동료 배우 존 헤밍과 헨리 콘델이 극단에 남은 자료로 펴낸 1623년 이절판, 이렇게 세 가지다. 세 판본은 대사의 분량과 표현이 서로 달라서, 현대 편집본은 이들을 비교해 대본을 정하고 번역본은 다시 그 편집본을 따른다.
가장 유명한 대사 “To be, or not to be”를 이 번역은 “있음이냐 없음이냐, 그것이 문제로다.”로 옮겼다. 흔히 알려진 ‘죽느냐 사느냐’가 삶과 죽음의 선택으로 들린다면, 이 번역은 존재 자체를 묻는 쪽으로 읽힌다. 출판사 소개에 실린 대목들은 원작처럼 행을 나눈 형태로 되어 있다. 대사를 문단처럼 몰아 읽기보다 한 행씩 끊어 가며, 가능하면 소리 내어 읽는 편이 극의 호흡을 따라가기 쉽다.
다섯 막을 한 줄씩 따라가면
제1막에서 엘시노어 성의 성벽 위로 죽은 선왕의 유령이 나타난다. 선왕이 죽은 지 두 달도 안 되어 왕비 거트루드는 선왕의 동생 클로디어스와 결혼했고, 클로디어스가 왕이 되었다. 유령은 햄릿에게 자신이 정원에서 잠든 사이 동생이 귀에 독을 부어 죽였다고 밝히고 복수를 명한다. 햄릿은 친구들에게, 앞으로 자신이 이상하게 굴더라도 모르는 척해 달라고 미리 맹세를 받아 둔다.
제2막에서 재상 폴로니어스는 햄릿이 딸 오필리아를 사랑하다 미쳤다고 믿고, 왕은 햄릿의 옛 친구 로즌크랜츠와 길든스턴을 불러 속을 떠본다. 유랑 극단이 도착하자 햄릿은 자신이 본 유령이 악마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며, 아버지의 죽음과 닮은 연극을 올려 왕의 반응을 보기로 한다.
제3막이 극의 중심이다. 연극 「곤자고의 살인」이 독살 장면에 이르자 왕은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곧이어 햄릿은 홀로 기도하는 왕을 보고도 칼을 거두고, 어머니의 방에서는 휘장 뒤의 인기척을 향해 칼을 찌르는데 거기 있던 사람은 폴로니어스다. 제4막에서 왕은 햄릿을 영국으로 보내며 그를 죽이라는 편지를 딸려 보내지만, 햄릿은 바다에서 해적을 만나 덴마크로 돌아온다. 그 사이 오필리아는 실성해 물에 빠져 죽고, 프랑스에서 돌아온 오빠 레어티즈는 아버지의 복수를 외친다. 제5막에서 햄릿은 무덤 파는 사람이 파낸 광대 요릭의 해골을 들여다보고, 곧이어 오필리아의 장례 행렬과 마주친다. 마지막 결투에서 왕비는 독이 든 잔을 마시고, 레어티즈와 햄릿은 독 묻은 칼에 찔린다. 햄릿은 그제야 왕을 찌르고 남은 잔을 마시게 한다.
세 아들이 같은 질문에 다르게 답한다
이 극에는 아버지를 잃은 아들이 햄릿 말고도 둘 더 있다. 레어티즈의 아버지 폴로니어스는 햄릿의 칼에 죽었다. 레어티즈는 소식을 듣자 곧장 돌아와 무리를 이끌고 왕궁에 들이닥치고, 결국 왕의 계획에 가담해 칼끝에 독을 바른다. 노르웨이의 왕자 포틴브라스의 아버지는 선왕 햄릿과 결투를 벌이다 죽었고, 약정에 따라 땅까지 잃었다. 극 초반 포틴브라스는 그 땅을 되찾으려 군대를 모으지만, 숙부인 노르웨이 왕의 꾸지람을 듣고 그 군대를 폴란드로 돌린다.
세 사람을 나란히 놓으면 햄릿의 머뭇거림이 성격 묘사만이 아니라 극의 구조라는 점이 보인다. 레어티즈는 생각 없이 뛰어들어 남의 계략에 이용되고, 포틴브라스는 명분이 작아도 행동으로 옮긴다. 햄릿은 그 사이에서 계속 묻는다. 두 줄기는 제5막 무덤 장면에서 한 번 만난다. 무덤 파는 사람은 자신이 그 일을 시작한 날이 선왕이 포틴브라스를 이긴 날이고, 바로 젊은 햄릿이 태어난 날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극의 끝에서 숨을 거두는 햄릿은 다음 왕으로 포틴브라스를 지지한다는 말을 남긴다.
멈추는 장면과 서두르는 장면
햄릿이 왜 복수를 미루는지는 오래된 질문이지만, 텍스트 안에서 그가 멈추는 순간마다 스스로 이유를 말한다는 점부터 확인해 두면 좋다. 제2막 끝에서 그는 유령이 자신의 슬픔을 이용하는 악마일 수 있으니 더 확실한 근거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그래서 연극을 준비한다. 여기서 미루는 것은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제3막 3장은 더 분명하다. 연극으로 확신을 얻은 햄릿은 무릎 꿇고 기도하는 왕의 등 뒤에 선다. 지금이면 해치울 수 있다고 말하던 그는, 기도하는 중에 죽이면 원수가 천국에 간다며 칼을 거둔다. 술에 취해 잠들었을 때나 구원과 거리가 먼 짓을 할 때 죽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햄릿이 나간 뒤 왕은 말은 위로 날아가도 생각은 아래에 남는다며, 자기 기도가 하늘에 닿지 않았다고 털어놓는다. 햄릿이 멈춘 이유가 실제로는 성립하지 않았던 셈이다.
그리고 바로 다음 장면에서 햄릿은 전혀 망설이지 않는다. 어머니의 방 휘장 뒤에서 소리가 나자 쥐라고 외치며 확인도 하지 않고 찌른다. 가장 신중하던 사람이 가장 성급하게 사람을 죽이는 장면이 나란히 붙어 있다. 이 두 장면 사이의 대비가 제3막을 읽는 핵심이다.

읽으면서 표시해 둘 것
첫째, 광기의 두 가지 모습이다. 햄릿은 제1막에서 앞으로 미친 척을 할 수 있다고 미리 말해 두고, 폴로니어스는 그의 헛소리에 조리가 있다고 곁말을 한다. 반면 오필리아의 광기에는 그런 계산이 없다. 같은 ‘미침’이라는 말이 두 인물에게 어떻게 다르게 쓰이는지 비교해 보자.
둘째, 극 속의 극이다. 햄릿은 배우들에게 대사를 과장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연극을 왕의 양심을 잡는 덫으로 쓴다. 누가 누구를 지켜보는지, 누가 연기하고 있는지를 표시하면 폴로니어스가 휘장 뒤에 숨는 장면까지 한 줄로 이어진다.
셋째, 제5막 2장의 햄릿이다. 결투를 앞두고 불길한 예감을 느끼면서도 그는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 데에도 섭리가 있다고 말하고, 준비되어 있는 것이 전부라고 덧붙인다. 앞선 막에서 계획하고 떠보던 사람이 여기서는 계획을 내려놓는다. 이 변화가 체념인지 깨달음인지는 읽는 사람이 판단할 몫이다. 민음사의 책 소개도 5막 2장의 햄릿이 있음과 없음, 선과 악으로 나뉜 세계를 넘어서는 듯 보인다고 짚으므로, 본문을 읽은 뒤 옮긴이의 작품 해설과 함께 견주어 보면 좋다.
한 가지만 해 본다면
막마다 ‘햄릿이 무엇을 하겠다고 말한 순간’과 ‘실제로 움직인 순간’을 한 줄씩 나란히 적어 보자. 1막의 맹세와 5막의 마지막 일격 사이에서 그 간격이 가장 좁아지는 곳은 뜻밖에도 폴로니어스를 찌르는 장면이고, 가장 넓어지는 곳은 기도하는 왕 앞이다. 이 두 줄을 채워 가다 보면 『햄릿』이 복수를 미루는 이야기라기보다, 생각과 행동이 어긋나는 순간들을 차례로 보여 주는 극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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